2015년 3월 30일 월요일

101 에필로그


소크라테스로 부터 시작한 고전산책을 도스토엡스키로 마무리지었다. 지난 2년동안 매주 한권씩 책을 소개하다보니 어느덧 1백권의 고전작품을 섭렵했다. 고대 문학부터 시작해서 후에는 나라별로 그리고 중요한 작가에 따라서 산책로를 잡아보았다
고전산책 연재를 할 수 있었던 계기는 콜로라도에서 지낸 7년동안의 독서 플랜이 주요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분주한 삶을 살다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없었던 콜로라도로 이사가서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는 외로운 마음이 들때마다 이를 앙물고 매달렸던 것이 고전 독서였다. 신간서적들을 읽다보면 새로운 생각들을 접하게 되는 것 같아서 참신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신간 사이 사이에 꼭 고전을 한권씩 읽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7년동안 섭렵한 책이 3백여권이었고, 이 가운데서 추리고 추려서 고전산책을 통해 1백권의 책을 소개할 수 있었다.

고전은 지혜의 보물창고다. 해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반복된다. 새로운 것 처럼 보이는 것들도 고전을 읽으며 유심히 살펴보면 이미 과거에 지난간 사상이나 관념들이 주기를 가지고 반복되는 것을 알게된다. 패션유행이 두 세대( 60년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고전을 많이 읽은 사람들은 마치 오래된 산삼을 먹어 새로운 힘을 받는 것 처럼 인생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지혜를 미리 알게된다

과거는 미래를 보게하는 가장 좋은 망원경이다.

여러 고전 작가들이 작품속에 담고있는 주요 테마는 영혼과 육신사이의 상반된 욕망, 인본주의와 신본주의 사이의 갈등 그리고 파도를 타는 듯한 낭만주의와 고전주의의 반복되는 순환이다. 고전을 통해 지혜을 터득한 사람이라면 삶의 촛점은 영혼에 맟춰져야한다. 나이들어가면서 오히려 육적인 것에 탐닉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삶을 살고있다면 그것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주인공 포트르와 같이 추접스런 인간이 되고만다

그래서 나는 삶의 목적을 온전히 확인하기 위해 중년의 나이에 또한번 낙동강 오리알을 자쳐해 지금 러시아 동토의 땅에 와있다. 러시아 영혼들에게 영혼의 소중함을 전하라는 소명을 받고 20여년만에 러시아땅을 다시 밟았을 때, 공교롭게도 지금 살고있는 지역이 150여년전 톨스토이가 창작의 불을 지폈던 볼가 강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렇다면 혹시 나에게도 톨스토이가 받았던 그런 영감이 주어지지는 않을까러시아 영혼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깨닫게하기 위해 새벽마다 기도하며 전능자의 도움을 간구할 때 오직 영혼을 위해 남은 인생을 투자하라는 확연한 목적을 재확인하게 된다.

지난 2년동안 고전산책 연재를 담당해준 한국일보 박흥률 국장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오랜 세월 동료, 동문 친구로 한결같이 배려해주는 마음이 있었기에 연재를 무사히 마칠수 있었다. 또한 부족한 사람의 글을 읽고 이메일로 격려해 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그간 연재된 글들은 개인블로그 (thebaeks.blogspot.com)에서 다시 볼 수있다.  

100 도스토엡스키 <죄와 벌>


 표트르 미하엘로비치 도스토엡스키
그는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다. 그의 작품이 후대에 미친 영향은 러시아 문화권을 휠씬 벗어나 니체의 초인철학, 프로이드의 상호병존심리, 앙드레 지드의 무상참여 그리고 카뮈의 부조리 사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권과 유명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의 작품속에 깊이 깔려있는 기독교적 종교관은 인류의 구원과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달려있다는 메시지를 오늘날까지 강렬하게 전하고 있다.

도스토엡스키의 작품이 시공을 초월해 15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도스토엡스키 특유의 인생을 궤뚤어보는 날카로운 통찰력 때문이다. 비록 자신의 인생은 도박, 파산, 결혼의 실패 그리고 고질적인 간질병으로 막장 인생과 같은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리얼리즘 그 자체다. 도스토엡스키의 작품에는 자비로운 살인자, 순결한 창녀 또는 탐욕스런 성직자등이 주요등장 인물이다. 어떻게 창녀가 순결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죄와 벌에 등장하는 소냐를 만나는 순간 대답을 찾게되고, 청년 라스꼴리꼬프는 자신의 논리가운데 불의한 자를 살인하는 것은 사회의 공리를 위한 일종의 자비로운 행위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죄와 벌 줄거리는 그의 다른 소설 백치,악령, 카라마조프 형제들과 같이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고, 때는 1860년대의 경제공황의 시기이며, 장소는 대도시 뻬쩨르부르그의 빈민가다. 거기 오층 집 지붕 밑 방에는 가정교사 자리를 잃고, 대학에도 다니지 못하는 가난한 학생 라스꼴리꼬프가 살고있다. 그는 고향에는 노모가 보잘것없는 연금과 푼돈벌이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고그의 여동생은 어느 지주집 가정교사로 있었으나 그 집주인이 그녀를 좋아하면서 오히려 그 집에서 쫓겨난다. 라스꼴리꼬프는 이러한 자기 가족을 구하고, 자기 자신도 이 지겨운 가난을 면하여, 대학도 마치고 출세의 길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돈이 필요했고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돈을 강탈한다. 그러나 의외로 노파의 여동생까지 순간적으로 살해하게 되면서 제 2의 살인은 그의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했고, 악몽에 사로잡히게 된다. 여기서 복잡한 자기 내면의 싸움과 함께, 예심 판사와 경찰을 상대로 하는 외적, 심리적 싸움이 시작된다. 예심판사는 증거가 거의 없는 완전범죄의 이 사건의 범인에 대하여 심리전을 시도하면서 최후의 대면에서 범인의 자수를 권유한다.  한편 순결한 마음씨의 소냐로부터도 자수할 것을 또 권유받게 된다. 그는 드디어 예심판사의 논리적 영향과 소냐의 도덕적 감화, 종교적 순결함에 감동해, 그 죄값을 치를 것을 결심하면서 시베리아 유형 길로 떠난다. 그를 뒤쫓아 간 소냐는 감옥 가까이에 살면서 그의 갱생의 길을 돕는다.

도스토엡스키는 이 소설의 뒷부분에 기록된 작가노트를 통해 라스꼴리꼬프의 회심은 성경 요한복음 11나사로의 부활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소설가운데 소냐가 라스꼬리꼬프에게 이 성경 구절을 읽어주면서 그는 자수를 결심하게 되고, 이 세상의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으며, 새로운 삶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복음적인 메시지를 강열하게 전하고 있다. 도스토엡시키는 이 소설을 통해 인본주의적 이성과 이념에 대결한 신성과 양심의 승리를 그려내고자했다.

99 니콜라이 카람진 <가엾은 리자>


러시아 문학이 세계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시발점은 18세기말 카람진에게서 찾을 수 있다. 카람진의 작품은 한국독자들에게는 최근까지도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투르기네프, 푸쉬킨,톨스토이 이전에 러시아 감상주의(센티멘탈리즘)문학의 시조라고 할수있다.

카람진의 대표작 가엾은 리자는 러시아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내용이나 구성면에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출판된 시기도 거의 비슷하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판된 후 많은 젊은이들이 베르테르 처럼 자살하는 소동들이 벌어졌던 것처럼 러시아에서도 가엾은 리자를 읽은 많은 젊은이들이 강이나 호수에 빠져 자살하는 일들이 있었다. 지금도 이 소설의 무대가 된 모스크바 근교 시노모프 수도원 연못은 리자의 연못이라고 이름이 붙여져있고, 젊은 연인들이 찾는 명소이기도하다. 소설은 내용은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불행하게 끝난 젊은 연인들의 통속적인 사랑이야기다.

리자는 17살 농부의 딸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순수한 시골아가씨다. 부친이 죽은 후 쇠약해진 어머니를 지극히 부양하는 효녀이기도하다. 에라스트는 부유한 귀족청년으로 마음씨는 착하지만 우유부단하고 의지가 약한 그래서 어찌보면 좀 경박한 부잣집 아들이다. 리자는 봄에는 꽃을 여름엔 과일열매들을 따서 내다 파는 일을 한다. 그런데 어느날 꽃을 사러온 에라스트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에라스트 또한 리자에게 반해 그녀에게 모든 물건을 자기에게만 팔라고 부탁한다. 이렇게 서로 사랑에 빠진 둘은 매일 밤 떡갈나무 밑에서 만나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신분의 차이로 사랑이 이루질 수 없음을 슬퍼하는 리자에게 에라스트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처음으로 밤을 함께 보낸다. 그러나 막상 육체적 관계를 맺은 후 에라스트는 점차 리자에 대한 마음이 식기 시작했고, 전쟁을 핑게삼아 리자의 곁을 떠난다. 몇달이 지난후 리자는 모스크바 시내에서 마차에서 내리는 에라스트와 우연히 마주치게된다. 에라스트는 전쟁터에 나간다고 하고는 대부분 시간을 도박을 하면서 보내 많은 돈을 잃고 궁여지책으로 돈많은 중년의 과부를 만나 정략적으로 결혼을 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이 장면에서 에라스트가 리자에게 하는 말은 통속 드라마의 한장면이다.
리자, 상황이 달라졌어, 사정이 생겼거든..나는 이제 약혼한 몸이야. 너를 위해서 나를 잊어줘. 네가 잘되기를 바랄뿐이야. 여기 1백루블이 있어. 이걸 가지고 어머니 보살피는데 도움이 되었으면해…”리자는 집으로 오는 길에 시노모프 수도원으로 발걸음을 돌려 연못에 몸을 던지는 비극으로 사랑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사랑이란 이름의 운명앞에 인간은 너무도 나약하고, 사랑이란 결코 논리적으로 이해할수 없는 것이라고 토를 달면 이또한 너무 통속적인가가엾은 리자(원제목:비에드나야 리자)는 최근 뮤지컬로 각색돼 여러나라에서 공연되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연출자 마르크 로조프스키가 각색한 뮤지컬은 유럽순회공연을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특별히 피아노와 기타, 바이올린으로 이어지는 러시아풍의 어쿠스틱 선율이 아주 매력적이다.

98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에 본질적으로 관심이 없다. 또한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겉으로는 애도의 뜻을 표하지만 내면으로는 안도의 숨을 쉬고있다. 다른 사람이 다 죽어도 자신이 죽을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않다. 때문에 타인의 동정을 구하는 태도는 어리석은 행동이고 본인의 아픔만을 더욱 가중시킬뿐이다.

판사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던 이반 일리치는 삶의 절정 순간에 불치병 판정을 받고 주위 사람들의 동정과 관심을 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가식과 위선뿐이었다. 톨스토이는 인간 내면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보편적인 이기심을 이반의 좌절과 고통을 통해 칼날같은 통찰력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반의 친구 슈바르츠는 죽은 이반 일리치의 집을 방문해 이반의 아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머리속으로는 그날 밤에 있는 카드놀이를 생각하고 있다. 또한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이반의 아내와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낮은 의자와 고장난 스프링을 가지고 씨름을 하고 있다. 함께 일했던 동료판사들은 이반이 죽음으로 인해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승진될 것이며 연봉이 어느 정도 올라갈 것에 골몰하고있다. 이반의 아내조차도 사람들 앞에서는 눈물짓고 슬퍼하지만 마음가운데는 남편의 연금을 세세하게 따지고 정부로 부터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방고자하는 생각으로 가득차있다. 인간은 어쩌면 가장 고상한 척하는 천박한 부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위대함은 삶의 천박한 부분뿐만아니라 은밀한 내면까지도 섬듯한 관찰력을 통해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해내는데 있다. 45세 중년의 가장, 판사로서 출세의 길을 걷고 있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죽어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다. 소설이기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은 1882년 러시아인데 오늘날 시간적 격차와 지리적,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스마트폰을 손에 달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조금도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느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나 공통적으로 당연하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는 보편타당한 소재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의 심경변화를 겪는다. 처음 그는 죽음을 부정하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한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연이어 실패하고, 죽어가는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이중성 속에서 그는 자신이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던 것들이 죽음 앞에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달아간다. 그리고, 삶에 있어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곱씹어보는데, 죽음을 앞 둔 인간의 진실한 절규는 오히려 죽음이 아닌 삶을 부각시킨다.

이반일리치의 죽음은 톨스토이의 중·단편 중 가장 훌륭하다 평가 받는 작품이다.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등 대표적인 작품을 완성한 후 10년동안 깊은 슬럼프가운데 빠져있다가 발표한 작품이라 톨스토이 작품세계에서는 일종의 분수령처럼 여기지는 작품이기도하다.


97 라빈드러나트 타고르 <기탄잘리>


노벨상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다. 아시안으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지난 1913년 수상했던 타고르는 기탄잘리라는 단 한 권의 산문시집으로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는 대표적인 시인이 되었다. 인도 켈커타 출신의 타고르는 신에게 바치는 노래 (Songs of Offering)라는 의미의 기탄잘리 시집을 벵골어로 출간했다. 나중에 영어로 번역 출판하면서 당시 유명한 영국시인이었던 W.B. 예이츠의 긴 서문을 붙어 유럽 전역에서 출판되었는데, 의외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까지 되었다.

기탄잘리는 그 제목만으로 너무 유명해 많은 사람들은 이미 그 시집의 내용을 다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작품은 기탄잘리 60번시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여든다그리고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그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라고 한국을 노래한 시에 덧붙여진 기탄잘리 35번 시를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타고르는 힌두교 인도의 신분제도에서 승려계급인 브라만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가운데는 어느 한 구절에도 힌두교와 관련 있는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단지 수록된 시들은 모두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것으로 신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서구의 독자들은 이 기탄잘리를 읽고 완벽한 기독교적인 시라고 해석하는가 하면 불교도들은 또 불교사상이 녹아 있는 훌륭한 불교시라고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타고르에 작품가운데 녹아있는 신에 대한 찬미는 범신론적인 신을 지칭하고 있으며 본인은 사실 어느 특정한 종교의 신을 지칭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1923년 김억시인에 의해 번역소개되었고 한용운등이 타고르의 영향을 받았다.

서문을 써준 예이츠는 기탄잘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이 번역의 원고를 여러 날 동안 가지고 다니면서 기차 안에서나 버스의 좌석에서 또는 레스토랑에서도 읽었다. 나는 어떤 낯선 이가 내가 그것에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가를 알아차릴까봐 가끔 그것을 덮어야 했다." 서구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타고르에 대한 찬사는 그의 서문 전체에 일관되게 나타나 있다.


한편 한국인들에게 타고르는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를 써서 한국의 독립정신을 높이사고 독립을 격려하는 송시를 전해준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시는 1929년 일본을 방문했던 타고르가 당시 동아일보의 조선방문 요청에 응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도쿄지국장 에게 이 시를 써 주었고 시인 주요한의 번역에 의해 그해 4월 동아일보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런데 이 시의 진실성이 최근들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 시가운데 타고르는 한국을 동방의 밝은 빛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등등으로 표현을 하고있지만 과연 타고르가 그 당시에 그렇게 조선을 사랑하며 이런 시를 썼을까하는데 의문이 있다. 또한 타고르는 당시 간단한 메모를 전했는데, 이 메모를 받은 사람이 문학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동해 이렇게 대단한 송시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사실을 추적해 보면 좀 씁씁한 일이지만 타고르는 인도의 독립을 늘 마음에 두고 일본이 오히려 아시아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것을 내심 지원하며 노벨상 수상이후 5번 일본을 방문하며 일본정부를 칭송했었다. 어떤 이유였건 타고르가 조선의 독립을 지원, 격려했다는 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것같다

96 우징송 <동서의 피안>


이 책을 읽게된 이유는 단 한가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재철 목사님(선교1백주년 기념교회 담임)이 평생에 꼭 한번은 읽어야 될 책으로 강추하셨기 때문이었다. 이재철 목사님의 사역과 성품을 닮고자 하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이 목사님은 나름대로청렴결백, 겸손한 목회 그리고 말한것을 꼭 실천하는 목회자로서 귀한 롤모델이다. 둘째 오래전에 홍성사라는기독교 출판사를 설립 운영해오신 출판계의 왕고참인 동시에 대학동문선배님이라는 것을 알게된 후부터는 더욱 존경과 정감이 가게된 분이었다. 이런 분이 성경다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이끌어 준 한권의 책이 동서의 피안이라는 말을 들었을때 이 책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은 상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동서의 피안은 요즘 잘못 읽으면 오해를 받기 딱 좋은 책이다. 종교혼합주의 또는 교계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회일치운동과 관련된 책은 아닌가하는 느낌을 받게되는데, 그것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소재가 동,서양의 여러 종교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어서 그런 인상을 받게되는 것이지 이 책 자체가 종교혼합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책은 읽는 독자의 관점에 따라 동양사상 입문서 처럼 다가올 수도 있고 또는 비교 종교학 서적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이 책은 종합적인 기독교 영성서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우징송 박사는 동양과 서양에서 두루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법학자적인 날카로운 관점을 가지고 동, 서양의 종교를 비교 분석 종합하여 모든 것을 초월하는 피안의 세계가 무엇인가에 대한 결론을 찾고 있다. 그런데 그의 결론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동서양의 모든 종교를 초월한 진리라는 것이다. 우징송 박사는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동양3대종교인 유교, 불교, 도교의 가르침과 성경의 정수를 서로 비교하며 공통분모를 뽑아내기 위한 노력을 이 책가운데 보이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동서와 신구를 초월한다. 그리스도교는 구교보다 더 오래되었고 신교보다 더 새롭다.”
선은 좀처럼 간단하지 않다. 대단히 신비하고 난해하다.때로 선은 아주 노골적으로 형식주의와 신화를 대놓고 짓밟아 버리며 성숙한 영적진화를 방해한다고 전통적인 신앙을 깔아뭉갠다.”

과연 동양인으로 서양의 종교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흔히 서양종교라고 취급하고 있는 기독교는 우징송 박사의 결론처럼 동서양을 완벽하게 초월한 피안의 종교인가? 오늘날 기독교는 사실상 서양의 종교라고 더 이상 말할수없다. 서유럽에서 기독교는 이미 오래전부터 쇄퇴의 길을 걸었고, 오히려 오늘날 기독교 종주국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또는 한국, 중국이 그 바톤을 이미 옮겨받았다. 종교라는 테두리안에서 기독교를 좀더 깊이 이해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동서의 피안은 기독교가 왜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보여준다. 하지만 내가 믿는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내게 진리의 삶, 그 자체이기때문이다

95 조지 고든 바이런 <바이런 시선>


조각 같은 외모로 뭇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시()의 천재이자 귀족출신 시인 바이런은 영국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19세기 초반 영국의 낭만주의를 이끈 3대 시인의 공통점은 20, 3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는 점이다. 바이런은 36, 셸리는 29, 키츠는 26세의 혈기 넘치는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820년대 초반의 일이다. 젊은 나이에 요절해 아쉬운 점도 있지만 한편으로 저들은 요절했기 때문에 어쩌면 영원토록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있기도하다. 바이런의 시는 자유로운 정신 그리고 당시 유럽사회의 부조리와 위선에 대한 풍자적인 공격을 마음껏 펼치는 한편, 영혼의 방황과 사랑의 달콤함과 쓰라림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는 바벨론 강가에 앉아서 울었도다 / 우리 원수들이 살육의 고함을 지르며 / 예루살렘의 지성소를 약탈하던 그 날을 생각하였도다 / 오 예루살렘의 슬픈 딸들이여! / 모두가 흩어져서 울면서 살았구나 / 우리가 자유롭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볼 때에 / 그들은 노래를 강요하였지만 / 우리 승리하는 노래는 아니었도다 / 우리의 오른 손, 영원히 말라버릴지어다! / 원수를 위하여 우리의 고귀한 하프를 연주하기 전에…”

바이런이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유명해졌더라"는 문명(文名)을 날리게 만들어준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는 1812년 프랑스 대혁명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에 완성되었다. 바이런 시선은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돈 주앙> 등 그의 대표작에서 뽑은 50편이 시가 담겼다. 바이런 시선에는 바이런 특유의 풍부한 감성이 넘치는 연애시도 많지만, 그리스의 자연과 역사 문화에 대한 회억과 찬탄이 담긴 시도 여럿 있다. <돈 주앙>에 나오는그리스의 섬들이라는 시가 대표적이다. 이 시에는 그리스 문명에 대한 바이런의 애탄이 그대로 드러난다.바이런이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자유를 지켜낸 마라톤 평원과 살라미스 바다에서 그리스의 과거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도 투르크에 압제 당하고 있던 그리스의노예적 삶의 현실에 대한 비탄과 분노 때문이었다.

그리스의 섬들, 그리스의 섬들이여! / 불타듯 열렬한 사포가 사랑하고 노래했던 곳
전쟁과 평화의 기예가 성장했던 곳 /델로스가 솟아오르고 아폴론이 태어났던 곳! / 영원한 여름이 그들을 아직 금빛으로 도금하고 있으나, / 태양을 빼고는, 모두가 저물어 버렸네


바이런은 단순히 그리스 문화에 탐닉하는 정도를 넘어 19세기 초 투르크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그리스 무장독립운동에 직접 참전했다가, 열병에 걸려 객사했다. 그리스에 대한 지독한 사랑을 안고 생을 마감할 정도로 격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가 타국인 그리스의 국가적 영웅으로 기림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자유와 정의를 추구한 그의 정신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