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0일 월요일

101 에필로그


소크라테스로 부터 시작한 고전산책을 도스토엡스키로 마무리지었다. 지난 2년동안 매주 한권씩 책을 소개하다보니 어느덧 1백권의 고전작품을 섭렵했다. 고대 문학부터 시작해서 후에는 나라별로 그리고 중요한 작가에 따라서 산책로를 잡아보았다
고전산책 연재를 할 수 있었던 계기는 콜로라도에서 지낸 7년동안의 독서 플랜이 주요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분주한 삶을 살다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없었던 콜로라도로 이사가서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는 외로운 마음이 들때마다 이를 앙물고 매달렸던 것이 고전 독서였다. 신간서적들을 읽다보면 새로운 생각들을 접하게 되는 것 같아서 참신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신간 사이 사이에 꼭 고전을 한권씩 읽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7년동안 섭렵한 책이 3백여권이었고, 이 가운데서 추리고 추려서 고전산책을 통해 1백권의 책을 소개할 수 있었다.

고전은 지혜의 보물창고다. 해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반복된다. 새로운 것 처럼 보이는 것들도 고전을 읽으며 유심히 살펴보면 이미 과거에 지난간 사상이나 관념들이 주기를 가지고 반복되는 것을 알게된다. 패션유행이 두 세대( 60년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고전을 많이 읽은 사람들은 마치 오래된 산삼을 먹어 새로운 힘을 받는 것 처럼 인생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지혜를 미리 알게된다

과거는 미래를 보게하는 가장 좋은 망원경이다.

여러 고전 작가들이 작품속에 담고있는 주요 테마는 영혼과 육신사이의 상반된 욕망, 인본주의와 신본주의 사이의 갈등 그리고 파도를 타는 듯한 낭만주의와 고전주의의 반복되는 순환이다. 고전을 통해 지혜을 터득한 사람이라면 삶의 촛점은 영혼에 맟춰져야한다. 나이들어가면서 오히려 육적인 것에 탐닉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삶을 살고있다면 그것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주인공 포트르와 같이 추접스런 인간이 되고만다

그래서 나는 삶의 목적을 온전히 확인하기 위해 중년의 나이에 또한번 낙동강 오리알을 자쳐해 지금 러시아 동토의 땅에 와있다. 러시아 영혼들에게 영혼의 소중함을 전하라는 소명을 받고 20여년만에 러시아땅을 다시 밟았을 때, 공교롭게도 지금 살고있는 지역이 150여년전 톨스토이가 창작의 불을 지폈던 볼가 강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렇다면 혹시 나에게도 톨스토이가 받았던 그런 영감이 주어지지는 않을까러시아 영혼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깨닫게하기 위해 새벽마다 기도하며 전능자의 도움을 간구할 때 오직 영혼을 위해 남은 인생을 투자하라는 확연한 목적을 재확인하게 된다.

지난 2년동안 고전산책 연재를 담당해준 한국일보 박흥률 국장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오랜 세월 동료, 동문 친구로 한결같이 배려해주는 마음이 있었기에 연재를 무사히 마칠수 있었다. 또한 부족한 사람의 글을 읽고 이메일로 격려해 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그간 연재된 글들은 개인블로그 (thebaeks.blogspot.com)에서 다시 볼 수있다.  

100 도스토엡스키 <죄와 벌>


 표트르 미하엘로비치 도스토엡스키
그는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다. 그의 작품이 후대에 미친 영향은 러시아 문화권을 휠씬 벗어나 니체의 초인철학, 프로이드의 상호병존심리, 앙드레 지드의 무상참여 그리고 카뮈의 부조리 사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권과 유명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의 작품속에 깊이 깔려있는 기독교적 종교관은 인류의 구원과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달려있다는 메시지를 오늘날까지 강렬하게 전하고 있다.

도스토엡스키의 작품이 시공을 초월해 15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도스토엡스키 특유의 인생을 궤뚤어보는 날카로운 통찰력 때문이다. 비록 자신의 인생은 도박, 파산, 결혼의 실패 그리고 고질적인 간질병으로 막장 인생과 같은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리얼리즘 그 자체다. 도스토엡스키의 작품에는 자비로운 살인자, 순결한 창녀 또는 탐욕스런 성직자등이 주요등장 인물이다. 어떻게 창녀가 순결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죄와 벌에 등장하는 소냐를 만나는 순간 대답을 찾게되고, 청년 라스꼴리꼬프는 자신의 논리가운데 불의한 자를 살인하는 것은 사회의 공리를 위한 일종의 자비로운 행위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죄와 벌 줄거리는 그의 다른 소설 백치,악령, 카라마조프 형제들과 같이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고, 때는 1860년대의 경제공황의 시기이며, 장소는 대도시 뻬쩨르부르그의 빈민가다. 거기 오층 집 지붕 밑 방에는 가정교사 자리를 잃고, 대학에도 다니지 못하는 가난한 학생 라스꼴리꼬프가 살고있다. 그는 고향에는 노모가 보잘것없는 연금과 푼돈벌이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고그의 여동생은 어느 지주집 가정교사로 있었으나 그 집주인이 그녀를 좋아하면서 오히려 그 집에서 쫓겨난다. 라스꼴리꼬프는 이러한 자기 가족을 구하고, 자기 자신도 이 지겨운 가난을 면하여, 대학도 마치고 출세의 길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돈이 필요했고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돈을 강탈한다. 그러나 의외로 노파의 여동생까지 순간적으로 살해하게 되면서 제 2의 살인은 그의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했고, 악몽에 사로잡히게 된다. 여기서 복잡한 자기 내면의 싸움과 함께, 예심 판사와 경찰을 상대로 하는 외적, 심리적 싸움이 시작된다. 예심판사는 증거가 거의 없는 완전범죄의 이 사건의 범인에 대하여 심리전을 시도하면서 최후의 대면에서 범인의 자수를 권유한다.  한편 순결한 마음씨의 소냐로부터도 자수할 것을 또 권유받게 된다. 그는 드디어 예심판사의 논리적 영향과 소냐의 도덕적 감화, 종교적 순결함에 감동해, 그 죄값을 치를 것을 결심하면서 시베리아 유형 길로 떠난다. 그를 뒤쫓아 간 소냐는 감옥 가까이에 살면서 그의 갱생의 길을 돕는다.

도스토엡스키는 이 소설의 뒷부분에 기록된 작가노트를 통해 라스꼴리꼬프의 회심은 성경 요한복음 11나사로의 부활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소설가운데 소냐가 라스꼬리꼬프에게 이 성경 구절을 읽어주면서 그는 자수를 결심하게 되고, 이 세상의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으며, 새로운 삶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복음적인 메시지를 강열하게 전하고 있다. 도스토엡시키는 이 소설을 통해 인본주의적 이성과 이념에 대결한 신성과 양심의 승리를 그려내고자했다.

99 니콜라이 카람진 <가엾은 리자>


러시아 문학이 세계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시발점은 18세기말 카람진에게서 찾을 수 있다. 카람진의 작품은 한국독자들에게는 최근까지도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투르기네프, 푸쉬킨,톨스토이 이전에 러시아 감상주의(센티멘탈리즘)문학의 시조라고 할수있다.

카람진의 대표작 가엾은 리자는 러시아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내용이나 구성면에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출판된 시기도 거의 비슷하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판된 후 많은 젊은이들이 베르테르 처럼 자살하는 소동들이 벌어졌던 것처럼 러시아에서도 가엾은 리자를 읽은 많은 젊은이들이 강이나 호수에 빠져 자살하는 일들이 있었다. 지금도 이 소설의 무대가 된 모스크바 근교 시노모프 수도원 연못은 리자의 연못이라고 이름이 붙여져있고, 젊은 연인들이 찾는 명소이기도하다. 소설은 내용은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불행하게 끝난 젊은 연인들의 통속적인 사랑이야기다.

리자는 17살 농부의 딸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순수한 시골아가씨다. 부친이 죽은 후 쇠약해진 어머니를 지극히 부양하는 효녀이기도하다. 에라스트는 부유한 귀족청년으로 마음씨는 착하지만 우유부단하고 의지가 약한 그래서 어찌보면 좀 경박한 부잣집 아들이다. 리자는 봄에는 꽃을 여름엔 과일열매들을 따서 내다 파는 일을 한다. 그런데 어느날 꽃을 사러온 에라스트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에라스트 또한 리자에게 반해 그녀에게 모든 물건을 자기에게만 팔라고 부탁한다. 이렇게 서로 사랑에 빠진 둘은 매일 밤 떡갈나무 밑에서 만나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신분의 차이로 사랑이 이루질 수 없음을 슬퍼하는 리자에게 에라스트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처음으로 밤을 함께 보낸다. 그러나 막상 육체적 관계를 맺은 후 에라스트는 점차 리자에 대한 마음이 식기 시작했고, 전쟁을 핑게삼아 리자의 곁을 떠난다. 몇달이 지난후 리자는 모스크바 시내에서 마차에서 내리는 에라스트와 우연히 마주치게된다. 에라스트는 전쟁터에 나간다고 하고는 대부분 시간을 도박을 하면서 보내 많은 돈을 잃고 궁여지책으로 돈많은 중년의 과부를 만나 정략적으로 결혼을 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이 장면에서 에라스트가 리자에게 하는 말은 통속 드라마의 한장면이다.
리자, 상황이 달라졌어, 사정이 생겼거든..나는 이제 약혼한 몸이야. 너를 위해서 나를 잊어줘. 네가 잘되기를 바랄뿐이야. 여기 1백루블이 있어. 이걸 가지고 어머니 보살피는데 도움이 되었으면해…”리자는 집으로 오는 길에 시노모프 수도원으로 발걸음을 돌려 연못에 몸을 던지는 비극으로 사랑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사랑이란 이름의 운명앞에 인간은 너무도 나약하고, 사랑이란 결코 논리적으로 이해할수 없는 것이라고 토를 달면 이또한 너무 통속적인가가엾은 리자(원제목:비에드나야 리자)는 최근 뮤지컬로 각색돼 여러나라에서 공연되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연출자 마르크 로조프스키가 각색한 뮤지컬은 유럽순회공연을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특별히 피아노와 기타, 바이올린으로 이어지는 러시아풍의 어쿠스틱 선율이 아주 매력적이다.

98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에 본질적으로 관심이 없다. 또한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겉으로는 애도의 뜻을 표하지만 내면으로는 안도의 숨을 쉬고있다. 다른 사람이 다 죽어도 자신이 죽을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않다. 때문에 타인의 동정을 구하는 태도는 어리석은 행동이고 본인의 아픔만을 더욱 가중시킬뿐이다.

판사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던 이반 일리치는 삶의 절정 순간에 불치병 판정을 받고 주위 사람들의 동정과 관심을 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가식과 위선뿐이었다. 톨스토이는 인간 내면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보편적인 이기심을 이반의 좌절과 고통을 통해 칼날같은 통찰력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반의 친구 슈바르츠는 죽은 이반 일리치의 집을 방문해 이반의 아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머리속으로는 그날 밤에 있는 카드놀이를 생각하고 있다. 또한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이반의 아내와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낮은 의자와 고장난 스프링을 가지고 씨름을 하고 있다. 함께 일했던 동료판사들은 이반이 죽음으로 인해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승진될 것이며 연봉이 어느 정도 올라갈 것에 골몰하고있다. 이반의 아내조차도 사람들 앞에서는 눈물짓고 슬퍼하지만 마음가운데는 남편의 연금을 세세하게 따지고 정부로 부터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방고자하는 생각으로 가득차있다. 인간은 어쩌면 가장 고상한 척하는 천박한 부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위대함은 삶의 천박한 부분뿐만아니라 은밀한 내면까지도 섬듯한 관찰력을 통해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해내는데 있다. 45세 중년의 가장, 판사로서 출세의 길을 걷고 있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죽어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다. 소설이기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은 1882년 러시아인데 오늘날 시간적 격차와 지리적,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스마트폰을 손에 달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조금도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느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나 공통적으로 당연하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는 보편타당한 소재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의 심경변화를 겪는다. 처음 그는 죽음을 부정하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한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연이어 실패하고, 죽어가는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이중성 속에서 그는 자신이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던 것들이 죽음 앞에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달아간다. 그리고, 삶에 있어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곱씹어보는데, 죽음을 앞 둔 인간의 진실한 절규는 오히려 죽음이 아닌 삶을 부각시킨다.

이반일리치의 죽음은 톨스토이의 중·단편 중 가장 훌륭하다 평가 받는 작품이다.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등 대표적인 작품을 완성한 후 10년동안 깊은 슬럼프가운데 빠져있다가 발표한 작품이라 톨스토이 작품세계에서는 일종의 분수령처럼 여기지는 작품이기도하다.


97 라빈드러나트 타고르 <기탄잘리>


노벨상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다. 아시안으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지난 1913년 수상했던 타고르는 기탄잘리라는 단 한 권의 산문시집으로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는 대표적인 시인이 되었다. 인도 켈커타 출신의 타고르는 신에게 바치는 노래 (Songs of Offering)라는 의미의 기탄잘리 시집을 벵골어로 출간했다. 나중에 영어로 번역 출판하면서 당시 유명한 영국시인이었던 W.B. 예이츠의 긴 서문을 붙어 유럽 전역에서 출판되었는데, 의외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까지 되었다.

기탄잘리는 그 제목만으로 너무 유명해 많은 사람들은 이미 그 시집의 내용을 다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작품은 기탄잘리 60번시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여든다그리고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그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라고 한국을 노래한 시에 덧붙여진 기탄잘리 35번 시를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타고르는 힌두교 인도의 신분제도에서 승려계급인 브라만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가운데는 어느 한 구절에도 힌두교와 관련 있는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단지 수록된 시들은 모두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것으로 신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서구의 독자들은 이 기탄잘리를 읽고 완벽한 기독교적인 시라고 해석하는가 하면 불교도들은 또 불교사상이 녹아 있는 훌륭한 불교시라고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타고르에 작품가운데 녹아있는 신에 대한 찬미는 범신론적인 신을 지칭하고 있으며 본인은 사실 어느 특정한 종교의 신을 지칭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1923년 김억시인에 의해 번역소개되었고 한용운등이 타고르의 영향을 받았다.

서문을 써준 예이츠는 기탄잘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이 번역의 원고를 여러 날 동안 가지고 다니면서 기차 안에서나 버스의 좌석에서 또는 레스토랑에서도 읽었다. 나는 어떤 낯선 이가 내가 그것에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가를 알아차릴까봐 가끔 그것을 덮어야 했다." 서구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타고르에 대한 찬사는 그의 서문 전체에 일관되게 나타나 있다.


한편 한국인들에게 타고르는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를 써서 한국의 독립정신을 높이사고 독립을 격려하는 송시를 전해준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시는 1929년 일본을 방문했던 타고르가 당시 동아일보의 조선방문 요청에 응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도쿄지국장 에게 이 시를 써 주었고 시인 주요한의 번역에 의해 그해 4월 동아일보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런데 이 시의 진실성이 최근들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 시가운데 타고르는 한국을 동방의 밝은 빛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등등으로 표현을 하고있지만 과연 타고르가 그 당시에 그렇게 조선을 사랑하며 이런 시를 썼을까하는데 의문이 있다. 또한 타고르는 당시 간단한 메모를 전했는데, 이 메모를 받은 사람이 문학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동해 이렇게 대단한 송시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사실을 추적해 보면 좀 씁씁한 일이지만 타고르는 인도의 독립을 늘 마음에 두고 일본이 오히려 아시아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것을 내심 지원하며 노벨상 수상이후 5번 일본을 방문하며 일본정부를 칭송했었다. 어떤 이유였건 타고르가 조선의 독립을 지원, 격려했다는 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것같다

96 우징송 <동서의 피안>


이 책을 읽게된 이유는 단 한가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재철 목사님(선교1백주년 기념교회 담임)이 평생에 꼭 한번은 읽어야 될 책으로 강추하셨기 때문이었다. 이재철 목사님의 사역과 성품을 닮고자 하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이 목사님은 나름대로청렴결백, 겸손한 목회 그리고 말한것을 꼭 실천하는 목회자로서 귀한 롤모델이다. 둘째 오래전에 홍성사라는기독교 출판사를 설립 운영해오신 출판계의 왕고참인 동시에 대학동문선배님이라는 것을 알게된 후부터는 더욱 존경과 정감이 가게된 분이었다. 이런 분이 성경다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이끌어 준 한권의 책이 동서의 피안이라는 말을 들었을때 이 책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은 상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동서의 피안은 요즘 잘못 읽으면 오해를 받기 딱 좋은 책이다. 종교혼합주의 또는 교계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회일치운동과 관련된 책은 아닌가하는 느낌을 받게되는데, 그것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소재가 동,서양의 여러 종교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어서 그런 인상을 받게되는 것이지 이 책 자체가 종교혼합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책은 읽는 독자의 관점에 따라 동양사상 입문서 처럼 다가올 수도 있고 또는 비교 종교학 서적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이 책은 종합적인 기독교 영성서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우징송 박사는 동양과 서양에서 두루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법학자적인 날카로운 관점을 가지고 동, 서양의 종교를 비교 분석 종합하여 모든 것을 초월하는 피안의 세계가 무엇인가에 대한 결론을 찾고 있다. 그런데 그의 결론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동서양의 모든 종교를 초월한 진리라는 것이다. 우징송 박사는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동양3대종교인 유교, 불교, 도교의 가르침과 성경의 정수를 서로 비교하며 공통분모를 뽑아내기 위한 노력을 이 책가운데 보이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동서와 신구를 초월한다. 그리스도교는 구교보다 더 오래되었고 신교보다 더 새롭다.”
선은 좀처럼 간단하지 않다. 대단히 신비하고 난해하다.때로 선은 아주 노골적으로 형식주의와 신화를 대놓고 짓밟아 버리며 성숙한 영적진화를 방해한다고 전통적인 신앙을 깔아뭉갠다.”

과연 동양인으로 서양의 종교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흔히 서양종교라고 취급하고 있는 기독교는 우징송 박사의 결론처럼 동서양을 완벽하게 초월한 피안의 종교인가? 오늘날 기독교는 사실상 서양의 종교라고 더 이상 말할수없다. 서유럽에서 기독교는 이미 오래전부터 쇄퇴의 길을 걸었고, 오히려 오늘날 기독교 종주국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또는 한국, 중국이 그 바톤을 이미 옮겨받았다. 종교라는 테두리안에서 기독교를 좀더 깊이 이해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동서의 피안은 기독교가 왜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보여준다. 하지만 내가 믿는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내게 진리의 삶, 그 자체이기때문이다

95 조지 고든 바이런 <바이런 시선>


조각 같은 외모로 뭇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시()의 천재이자 귀족출신 시인 바이런은 영국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19세기 초반 영국의 낭만주의를 이끈 3대 시인의 공통점은 20, 3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는 점이다. 바이런은 36, 셸리는 29, 키츠는 26세의 혈기 넘치는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820년대 초반의 일이다. 젊은 나이에 요절해 아쉬운 점도 있지만 한편으로 저들은 요절했기 때문에 어쩌면 영원토록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있기도하다. 바이런의 시는 자유로운 정신 그리고 당시 유럽사회의 부조리와 위선에 대한 풍자적인 공격을 마음껏 펼치는 한편, 영혼의 방황과 사랑의 달콤함과 쓰라림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는 바벨론 강가에 앉아서 울었도다 / 우리 원수들이 살육의 고함을 지르며 / 예루살렘의 지성소를 약탈하던 그 날을 생각하였도다 / 오 예루살렘의 슬픈 딸들이여! / 모두가 흩어져서 울면서 살았구나 / 우리가 자유롭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볼 때에 / 그들은 노래를 강요하였지만 / 우리 승리하는 노래는 아니었도다 / 우리의 오른 손, 영원히 말라버릴지어다! / 원수를 위하여 우리의 고귀한 하프를 연주하기 전에…”

바이런이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유명해졌더라"는 문명(文名)을 날리게 만들어준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는 1812년 프랑스 대혁명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에 완성되었다. 바이런 시선은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돈 주앙> 등 그의 대표작에서 뽑은 50편이 시가 담겼다. 바이런 시선에는 바이런 특유의 풍부한 감성이 넘치는 연애시도 많지만, 그리스의 자연과 역사 문화에 대한 회억과 찬탄이 담긴 시도 여럿 있다. <돈 주앙>에 나오는그리스의 섬들이라는 시가 대표적이다. 이 시에는 그리스 문명에 대한 바이런의 애탄이 그대로 드러난다.바이런이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자유를 지켜낸 마라톤 평원과 살라미스 바다에서 그리스의 과거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도 투르크에 압제 당하고 있던 그리스의노예적 삶의 현실에 대한 비탄과 분노 때문이었다.

그리스의 섬들, 그리스의 섬들이여! / 불타듯 열렬한 사포가 사랑하고 노래했던 곳
전쟁과 평화의 기예가 성장했던 곳 /델로스가 솟아오르고 아폴론이 태어났던 곳! / 영원한 여름이 그들을 아직 금빛으로 도금하고 있으나, / 태양을 빼고는, 모두가 저물어 버렸네


바이런은 단순히 그리스 문화에 탐닉하는 정도를 넘어 19세기 초 투르크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그리스 무장독립운동에 직접 참전했다가, 열병에 걸려 객사했다. 그리스에 대한 지독한 사랑을 안고 생을 마감할 정도로 격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가 타국인 그리스의 국가적 영웅으로 기림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자유와 정의를 추구한 그의 정신 때문이었다.

94 이광수 <무정>


한국사람이 스스로 생각하는 한국민족은 어떤 민족인가? 엽전근성이라는 자조적인 말은 왜 생겼을까? 안타깝게도 세월호 사건이나 한국의 정치행태, 또는 동포사회의 일부 단체장들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엽전근성이라는 말이 어쩌면 한국 사람들의 속성을 잘 표현하는 말이라고 동의하게 될 때도 있다.
개화시기 한국의 대표작가 춘원 이광수는 1920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논문 민족개조론 그리고 민족적 경륜이란 글을 통해 한국인의 위선, 편협함, 정직성의 결여, 무질서, 잔꾀, 그리고 요행을 바라는 심리, 음험한 술수등을 한국민족이 가지고 있는 엽전근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나라 잃은 원인을 당파싸움과 위선, 체면치례를 목숨보다 귀하게 생각하는 유교적인 국민 습성때문이라고 지적하고 교육을 통해 계몽하고 민족운동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독립이 어렵다면 자치권이라도 획득해야 된다며 자치권을 획득의 중요성을 펼쳐나갔다. 이광수의 대표적인 사상은 이렇게 민족개조론과 문학적으로 반영된 자유연애론으로 양분되어진다. 최초의 한국근대 장편소설로 잘알려진 무정(無情)은 이 두가지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는 한국고전 소설중의 고전이다.

주인공 박영채는 신식학교를 운영하던 아버지 박진사와 오빠들이 감옥에 갇히고 집안이 몰락하자 가족을 부양하기위해 기녀의 길을 택한다. 딸이 기녀가 되었다는 소식에 충격받은 아버지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며 옥에서 죽는다. 한편 박진사의 제자이자 경성학교 영어교사인 이형식은 미국유학을 준비하는 김장로의 딸 선형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오랫동안 보지못했던 영채를 만난 형식은 기녀가 된 영채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기녀명부에서 빼려고하나 일천원이 없어 주저하게된다. 그 사이에 영채는 김현수 일당에게 강간을 당한다. 절망감에 대동강에 빠져 죽으려고 유서를 남기고 형식을 떠난다. 한편 형식의 성실한 모습을 지켜보던 김장로는 형식을 사위로 들일 생각을 하고 출석하는 개신교회 목사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밝힌다. 형식은 행방불명이 된 영채를 잊지못하고 갈등하지만 결국 김장로의 딸 선형과 약혼을 한다. 일본유학을 떠나는 길에 우연히 재회하게 된 형식과 영채는 과거의 애뜻한 감정은 그대로 있어도 현실은 이미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된 것을 깨닫고, 장래에 민족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토론하고 마지막 장면은 영채가 일본음악학교에서 음악인으로 활동하는 활약상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막을 내린다.

소설 무정은 아직까지도 유교적인 전통가운데 철저하게 젖어있어던 당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는 크나 큰 충격이었다. 남녀평등 자유연애 사상도 그러했지만 소설가운데 녹아있는 신세계를 향한 계몽사상이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했던 것이다.

한민족이 지난 반세기동안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열매를 보면 한국민족은 절대로 엽전근성에 젖어있는 열등한 민족이 아니다. 한세기전에 이광수가 지적했던 엽전근성은 일본이 한국민족을 열등민족으로 끌어내리기 위한 신민지 사관의 연장선상에서 재해석되야한다. 왜냐하면 2차대전이 끝나고 많은 신생독립국가들이 탄생했지만 한국처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동서고금을 통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경제 15위에 올라있다는 한국,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입에 침이마르도록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것이 한국의 교육과 근면성이라는 것을 보면 이제는 우리는 더 이상 엽전이라고 스스로 비하하는 말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93 김동인 <감자>


김동인의 단편소설들을 읽으면 한국 개화기부터 일제시대때의 사회상을 엿볼수 있다. 김동인은 한국단편소설의 원조로서 계몽주의 일색이었던 초창기 신문학 환경에서 다양한 주제의식을 형상화하여 소설의 지평을 넓힌 작가로 평가를 받고있다.그가 남긴 대표적인 단편소설로는 배따라기’’광염소나타’’발까락이 닮았네’’붉은산’’신앙으로’’감자’’약한자의 슬픔등이있고 장편소설로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대장부로 묘사한 역사소설 운현궁의 봄을 남겼다. 이 가운데 감자는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짜임새면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꼽힌다.  

비교적 엄한 가문의 딸로 자라난 복녀는 막연하나마 도덕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극도의 가난에 처하게된 그녀는 15세의 어린나이에 같은 동네에 사는 20년 연상의 홀아비에게 80원에 팔려서 시집을 가게된다. 남편의 무능과 게으름으로 더욱 가난하게 되어 거지소굴인 평양 칠성문밖에 살면서 송충이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처량한 신세가 된다. 어느날 복녀는 함께 송충이를 잡던 젊은 여인들이 놀면서도 자기보더 더 많은 삯을 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사정을 알고보니 노동 감독과 은밀히 특별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복녀도 그 특권받는 대열에 끼면서 인생 도덕관이 송두리체 바뀌게 된다. 그후 복녀는 마치 잘먹고 잘사는 삶의 비결이라도 배운 듯이 터놓고 매음을 시작하게 되고 나중에는 중국인 왕서방과 관계를 지속하게된다. 그런데 왕서방이 어느날 처녀하나를 사서 장가를 들겠다고 하는날 강한 질투심으로 그의 신방에 뛰어들어 낫을 휘드르다가 도리어 그 낫에 찔려 죽게된다. 복녀의 시체를 두고 남편, 왕서방, 한의사간에 뒷 돈 거래가 이뤄져, 복녀는 낫에 찔려 죽은 것이 아니고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을 받고 아무도 보는 이없이 공동묘지로 실려나간다.

소설 감자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1930년도 당시 농촌지역의 성적문란, 돈 좀있는 중국인 지주의 부도덕적인 행실등을 소재로 그려낸 사실주의 소설이다.

일본의 식민지하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동반되는 행위이며 나름대로의 굳은 결의가 필요했다. 그 당시 많은 문인들이 일제의 감시와 검열을 거치느니 차라리 붓을 꺽고 땅 파는 일을 했던 것도 이같은 이유였다. 김동인은 생계도 건강도 팽개치고 끝까지 문학인으로 살다간 현대문학의 선구자였지만 광복을 앞둔 시점에서 그가 행했던 친일행각은 병적이었다. 개인 삶의 행적으로 인해 작품의 고유한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작품안에 내면화되있는 논리, 식민지 시대 친일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던 그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와 평가다.식민지를 사는 지식인들에게는 권력자를 닮고자하는 식민지인의 욕망과 타협이 어느새 그들의 가치를 내면화하게되는 일들이 발생한다. 그리하며 변절자라는 부끄러운 명함을 달게된 많은 조선 작가들은 광복이 도래할때까지 식민지 상태의 유지를 용인하고 정당화하면서 대동아공영에 대한 환상을 민중들의 마음에 불어넣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92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한국 근대고전 문학작품들을 살펴보다가 육당 최남선의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최남선은 한국 근대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1904년 그의 나이 불과 열다섯 살 때 동경으로 유학을 간다. 황실에서 파견하는 특파 유학생으로 선발된 최남선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어린 나이에 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난 셈이다. 이광수, 홍명희, 최남선 등 일명 ‘동경삼재(東京三才, 동경의 3대 천재)’가 교류를 시작한 것이 최남선의 나이 열일곱 살 때이니, 이들은 청소년기에 이국 타향에서 허물없이 생각을 주고 받았던 조선의 인물들이었다.   

한국 근대문학에서 새로운 형식의 시(신체시)로 인정받은 ()에게서 소년에게는 최남선이 1907년 귀국한 뒤 민족의 시대적 각성을 위한 신문화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이광수와 함께 창간한 소년지의 창간시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철썩, 철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같은 바윗돌이나 /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 철썩, 철썩 척 튜르릉 꽝

나중에 그의 시집 백팔번뇌의 서시로 실린 이 시는 도래하는 문명의 힘과 미래에 대한 작가의 태도와 각오가 잘 드러나 있다. 파도와 함께 밀려오는 바다의 위력앞에서 큰 산이나 거대한 바웟돌 같은 무엇도 힘없이 쓰려 버리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돌이킬 수도 저항 할 수도 없는 시대의 조류이기에 끝내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최남선에게 있어 조선 개화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마치 거대한 파도와 같이 저항할 수없는 것이었다.  

신문관 창립이후 3.1운동까지 10여년간 최남선은 자타가 공인하는 신문화 운동의 기수였다. 하지만 기미 독립선언서의 작성자로 3년여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옥한 이후 그는 민족주의적 지조와 학자의 길 사이에서 학자쪽을 선택하게된다. 후에 그는 당시 그의 결정에 대해 이렇게 회고하고있다.

지조냐 학자냐 양자중 골라잡아야하게 된 때에 대중은 나에게 지조를 븥잡으라고 하였으나 나는 그 뜻을 버리고 학업을 붙잡으면서 다른 것을 다 버렸다. 그것은 대중의 나에 대한 분노가 여기서 시작돼 나오는 것을 내가 잘 알며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이기적인 마음에 온 것임을 알고 있다.”

학자의 길을 선택하면서 그는 후에 친일파 변절자로 낙인이 찍히는 여러가지 오류들을 범하게된다. 특별히 춘원 이광수와 함께 창씨개명에 앞장서고 학도의용군에 조선청년들이 많이 지원할 것을 선동하는 강연회를 주최하고 또한 관련 글을 써서 일제정권의 앞잡이 역할을 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광복후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비난을 받다가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형무소에 수감, 투옥까지 되었으나 후에 병보석을 출감했다.

조선의 독립이 한 세대가 지나도록 요연한 현실처럼 느껴지던 세대를 살아간 일제통치말기에 조선 지식인들은 어쩔수 없이 변절의 길을 걸었다. 조선의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고 끝까지 투쟁한 독립 투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문학가, 지식인들은 타협을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과연 비난의 돌을 던질 수 있을까… 

2015년 을미년 새해를 시작하며 바닷가 나가 파도소리에 한참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 “철썩, 철썩 척 쏴아…”세월은 가고 습관처럼 새해가 찾아오곤 하지만 100여년전 최남선에게 조선의 개혁을 요구하는 강렬한 시대적 요청으로 들려왔던 그 파도 소리는 그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91 심 훈 <상록수>


잠깐 잘하거나 한동안만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아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누구를 사랑하는 일,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지않고 항상 싱싱한 푸르름을 간직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않다.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아랑곳 없이 항상 푸르름을 간직한 체 굳굳히 서있는 상록수(常綠樹)는 일제치하 암울한 시대를 건너오던 항일 지식인들에게는 지조와 정절의 상징이었다.   

한국 근대소설의 대표작 심훈의 상록수는 이광수의 흙과 더불어 한국 농촌계몽소설의 쌍벽을 이룬다. 일제의 우민화 정책에 대한 항거로 시작된 농촌계몽운동의 뿌리는 19세기말 러시아 브나로드 운동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브나로드(V Narod)민중속으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말로 제정말기 지식인들이 이상사회 건설을 위해 먼저 민중을 깨우쳐야 한다는 구호를 내세우고 수백명의 러시아 청년학생들이 농촌으로 들어가 계몽 교육활동을 벌였던 일을 말한다
그 후 브나로드는 농촌계몽운동을 뜻하는 동의어로 사용되었고, 일제시대에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농민들에게 아는것이 힘이다, 배우자 그리고 가르치자라는 민중교육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상록수는 바로 이런 시대적 상황을 무대로 하고 있다. 소설 상록수는 전도사 최용신(소설속의 채영신)이라는 실존인물을 소재로 하고 있다.

신문사 주최 농촌계몽운동에 참여한 박동혁과 채영신은 주최측이 베푼 위로회에서 함께 연설을 한 것이 계기가 돼 알게된다. 학교를 졸업한 뒤 동혁은 고향인 한곡리로 영신은 기독교청년연합회 특별파견자의 신분으로 경기도 청석골로 각각 내려가 농촌사업에 헌신한다. 그러던 중 그들의 동지의식은 사랑으로 발전하여 혼인을 약속하게된다. 고리대금업자 강기천이 동혁의 농민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농우회원들을 매수하는 등 농간을 부리자 이에 화가 난 동혁의 동생 동화가 회관에 불을 지르고 동혁은 동생의 죄를 뒤집어쓰고 대신 잡혀간다. 그가 감옥에서 풀려나 청석골로 영신을 찾아갔을 때 그녀는 과로로 인한 지병이 재발해 이미 죽어버린 뒤었다. 영신의 죽음을 알고 동혁은 이제부터 두 사람의 몫을 해낼 것이라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한곡리 청년회관으로 돌아온다.

심훈은 안타깝게도 35살의 젊은 나이에 장티푸스에 걸려 요절했다. 죽기 전 심훈은 일제의 식민통치가 점차 지식인들의 목을 조여오는 상황가운데 광복의 그날을 꿈같이 기대하며 그날이 오면이라는 유명한 저항시를 남겼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 기뻐서 죽사오매 오리혀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일제시대때 농촌계몽운동,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에는 항상 개신교의 영향이 있었다. 사회를 깨우치고 계몽운동을 벌이는 일에 개신교가 늘 앞장을 서곤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는 어쩌다 이런 선한 영향력은 모두 상실하고 오히려 사회로 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었는지 기독교 계몽소설 상록수를 읽으며 다시 한번 반성해볼 문제이다.     

90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또 한해를 보내면서 문득 윤동주 시인이 노래한 이 마음을 스쳐갔다. 지난 연말을 기억해 보면 바로 엇그제의 일들 같은데 어느덧 또 새 달력을 찾아 벽에 거는 시간이 된 것이다. 세월이 이리도 빠르게 흘러가고 주위의 많은 것들이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때 나는 윤동주의 별을 기억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 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인은 한국 사람에게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19171230일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나 27살의 짧은 삶을 살고 간 영원한 청년시인 윤동주는 신실한 기독청년이었으며, 고뇌하는 애국투사였고, 삶을 누구보다 관조하고 사랑한 시인이었다.

그가 죽고 난 후 출간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모두 116(3)의 시가 수록이 되어있는데 어느 하나 함축된 언어의 정수, 절제된 감정의 아름다움을 그리지않은 작품이 없다. 풍성한 말 잔치에는 들을 것없다. 과장된 감정의 표현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한다
윤동주의 시가 오늘날까지도 사랑받고 언제 다시 읽어도 색다른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가 사용한 절제된 언어, 그리고 너무도 짧게 끝나버린 그의 삶이 주는 아쉬움 때문이다. 특별히 은 윤동주에게 있어서 소망의 투시대상이였고, 모든 미학의 시발점이었다. 땅의 것들을 생각하면 암울하고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런 일제시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볼 줄 알았던 윤동주 시인은 늘 그의 시가운데 별을 통한 영혼의 정화를 그리고 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 내 이름자를 써 보고 /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닥입니다 /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일제시대를 건너오면서 많은 문학가들이 신사참배, 창씨개명등과 같은 일본의 식민지통치정책에 동조해 결국은 변절자라는 꼬리를 달았다. 이광수와 같은 대표적인 소설가도 광복전에 창씨개명을 정당화하고 창씨개명을 권유하는 글을 썼던 이유로 변절자의 낙인이 찍혔다. 그 뿐인가 사명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겠다던 수 많은 개신교 목사들도 일제의 통치아래 신사참배에 동참하며 우상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면에서 조부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이어 받았던 윤동주는 순교자이기도 하다.

괴로웠던 사나이 /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 나에게도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꽃처럼 피어나는 피로 / 어두워 가는 하늘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간음를 밥먹듯이 범하고 있는 더러운 인간들이 어쩌다 운이 없어 붙잡힌 간통한 여인에게 가장 먼저 돌을 던지는 말도 안되는 세상멀청한 여인을 마녀로 몰아세워 불에 태워죽이기 원했던 마녀사냥의 불결한 정서가 멀청하게 살아 귀신처럼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이 혼탁한 시대에 윤동주의 별은 마치 2천년전 베들레헴에 나타난 별과 같이 영혼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

89 황순원 <카인의 후예>


새로운 시대의 도래는 새로운 혼란의 시작이기도 하다. 남북통일이 언제쯤 이뤄질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를 읽다보면 우리 민족이 통일을 어떤 마음으로 준비해야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된다
일제시대때 조선 사람들의 소원은 광복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고대하던 해방이 날이 다가왔을때 그 기쁨은 짧았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혼란과 폭력이 일제를 대신했다. 그것은 준비되지 않았고 남의 힘에 의해 해방을 맞게된 조선민족이 당면하게 된 낯설지않은 인간의 이기적 욕망 때문이었다

소설카인의 후예는 해방직후 북한의 한 마을에서 토지개혁과 관련해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소설이라고 하지만 어찌보면 광복직후의 한국역사를 증언하는 일종의 역사물이기도 하다.

주인공 박훈은 평양에서 공부하는 동안 조부와 아버지의 사망으로 졸지에 지주가 되었다. 도섭 영감은 훈이네 토지를 관리해 온 마름인데 박훈은 마름의 딸 오작녀를 좋아한다. 해방이 되어 북한 세력이 들어서면서 지주로서 또한 지식인으로 학당을 운영했던 박훈은 학당을 당에 압수 당하고 도섭 영감은 지주와 관계를 끊으라는 당의 압력을 받아 토지개혁운동에 앞잡이가 된다. 농민대회가 열리며 대부분 지주들은 예외없이 반동분자로 몰려 숙청을 당하지만 이와중에 박훈은 오작녀의 도움으로 간신히 숙청은 면한다
고향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데올로기의 도입으로 신분이 하루아침이 뒤바뀌고 모든 것이 불안전한 틈을 타 서로 불신하며, 질투 증오하는 가운데 살인까지 자행하게된다. 그것은 형제와 다름없는 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범죄였다. 또한 이런한 범죄는 한 마을을 넘어서 조선땅 한민족 간의 문제로 확대되고 황순원은 문제의 원인을 카인과 아벨의 사건까지 소급하며 인류의 원죄와 연결한다. ()과 같은 소설가 황순원의 탁월성은 조선 민족에게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보편적 의미로 확대시켜 한국의 역사적 사건를 소설로 형상화시킨 점에 있다.

카인은 자신의 동생 아벨을 질투 때문에 살해한 인류 최초의 살인자다. 창세기 4장에 기록된 카인과 아벨의 제사를 놓고 많은 신학자들이 서로 다른 해석들을 하고 있지만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왜 카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는지 이유를 찾으려는 것보다 카인의 마음가운데 어떻게 그런 불같은 미움과 질투, 그리고 폭력이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다는 것이 카인을 미워했거나 내친것은 아니고 또한 한쪽을 선택했다고해도 다른 쪽을 버린것이 아닌것임에도 불구하고 카인은 윈죄로인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고 대신 질투하는 죄의 본성으로 끌려갔다

또 다른 본질적인 질문은 카인과 아벨이 한 형제로 가까운 곳에 서로 살고 있었다면 왜 마음을 합해 함께 하나님께 아름다운 제사를 드리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인간의 편협된 이기적인 마음가운데서 그 윈인을 찾을 수 있다.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 뿐만아니라 미국 존 스타인벡도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소재로 에덴의 동쪽을 완성해 인간 죄성의 뿌리는 카인의 핏줄가운데 있는것으로 묘사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