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이
스스로 생각하는 한국민족은 어떤 민족인가? 엽전근성이라는 자조적인 말은 왜 생겼을까? 안타깝게도 세월호 사건이나 한국의 정치행태,
또는 동포사회의 일부 단체장들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엽전근성이라는 말이 어쩌면 한국 사람들의 속성을 잘 표현하는 말이라고
동의하게 될 때도 있다.
개화시기
한국의 대표작가 춘원 이광수는 1920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논문 민족개조론 그리고 민족적 경륜이란 글을 통해 한국인의 위선, 편협함,
정직성의 결여, 무질서, 잔꾀,
그리고 요행을 바라는 심리, 음험한 술수등을 한국민족이 가지고 있는 엽전근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나라 잃은 원인을 당파싸움과 위선, 체면치례를 목숨보다
귀하게 생각하는 유교적인 국민 습성때문이라고 지적하고 교육을 통해 계몽하고 민족운동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독립이 어렵다면 자치권이라도 획득해야 된다며
자치권을 획득의 중요성을 펼쳐나갔다. 이광수의 대표적인 사상은 이렇게 민족개조론과 문학적으로 반영된 자유연애론으로
양분되어진다. 최초의 한국근대 장편소설로 잘알려진 무정(無情)은 이 두가지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는 한국고전 소설중의 고전이다.
주인공
박영채는 신식학교를 운영하던 아버지 박진사와 오빠들이 감옥에 갇히고 집안이 몰락하자 가족을 부양하기위해 기녀의 길을 택한다. 딸이 기녀가 되었다는 소식에 충격받은 아버지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며 옥에서 죽는다. 한편 박진사의 제자이자 경성학교 영어교사인 이형식은 미국유학을 준비하는
김장로의 딸 선형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오랫동안 보지못했던 영채를 만난 형식은 기녀가 된 영채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기녀명부에서 빼려고하나 일천원이 없어 주저하게된다. 그 사이에 영채는 김현수 일당에게 강간을 당한다.
절망감에 대동강에 빠져 죽으려고 유서를 남기고 형식을 떠난다. 한편 형식의 성실한
모습을 지켜보던 김장로는 형식을 사위로 들일 생각을 하고 출석하는 개신교회 목사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밝힌다. 형식은 행방불명이 된 영채를 잊지못하고 갈등하지만 결국 김장로의 딸 선형과 약혼을 한다. 일본유학을
떠나는 길에 우연히 재회하게 된 형식과 영채는 과거의 애뜻한 감정은 그대로 있어도 현실은 이미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된 것을 깨닫고,
장래에 민족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토론하고 마지막 장면은 영채가 일본음악학교에서 음악인으로 활동하는
활약상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막을 내린다.
소설
무정은 아직까지도 유교적인 전통가운데 철저하게 젖어있어던 당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는 크나 큰 충격이었다. 남녀평등 자유연애 사상도 그러했지만 소설가운데 녹아있는
신세계를 향한 계몽사상이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했던 것이다.
한민족이
지난 반세기동안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열매를 보면 한국민족은 절대로 엽전근성에 젖어있는 열등한 민족이 아니다. 한세기전에 이광수가 지적했던 엽전근성은 일본이 한국민족을
열등민족으로 끌어내리기 위한 신민지 사관의 연장선상에서 재해석되야한다. 왜냐하면 2차대전이 끝나고 많은 신생독립국가들이 탄생했지만 한국처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동서고금을 통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경제 15위에 올라있다는 한국,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입에 침이마르도록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것이 한국의 교육과 근면성이라는 것을 보면 이제는 우리는
더 이상 엽전이라고 스스로 비하하는 말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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