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0일 월요일



<88> 토마스 만 <마의 산>

독일민족은 어쩌면 가장 이성적인 동시에 광적인 민족이다. 나치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세계대전을 일으킬 때 독일의 철학자, 문학가들은 히틀러를 지지하던지 아니면 강제 추방을 당하던지 양자택일을 했어야 했다. 그러자 인간의 이성과 순수 양심을 주장하던 수 많은 지성인, 철학자들은 앞을 다퉈 나치당에 입당해 히틀러 만세를 외쳐댔고,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명성을 얻고 있던 마르틴 하이데거(시간과 존재의 저자)오직 총통(히틀러) 한 사람만이 독일의 현실이며 미래이고, 독일의 법이다며 나치 정권의 철학적 정통성을 제공한 대표적인 학자가 되었다

인간의 지성이란 믿을 것이 못된다. 그 와중에 신학자가운데는 본 회퍼, 철학자 쿠르트 후버, 문학쪽에서는 토마스 만과 같은 사람들이 히틀러의 파시즘을 비난하는 세력으로 잔존했었고 후에는 모두 미국 망명길에 오른다.

1929년 노벨 문학상 수상했던 토마스 만의 마의 산’(The Magic Mountain) 2차대전중 스위스 결핵요양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을 시작해 미국 망명기간동안 완성한 작품이다.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사촌이 치료받고 있는 요양원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그곳에서 오히려 자신의 병이 발견되어 7년동안 요양생활을 하게된다. 요양원은 세계 각처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곳이다. 그들은 국적도 언어도 다르고, 교양도 지식수준도 천차만별이어서 주인공에게 아주 낮선 세계를 경험케한다. 카스토르프와 사촌 요아힘 침센은 요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명상을 한다. 장편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하게 말해서 등장인물들의 끊임없는 대화와 명상이다. 현실 세상에서는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서 현실과 동떨어진 산위의 요양원은 일종의 마법(magic)의 산과 같은 곳이었다

이 책이 유명한 작품이면서도 일반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것은 큰 사건이나 반전이 없고 분량이 긴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작품이 품고 있는 이중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읽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교양소설, 시대소설, 사회풍자소설등으로 분류가 된다. 마의 산의 영어제목이 ‘The magic mountain’ 인데 여기서 'magic' '()'의 의미로마력’, ‘주술’, ‘요상함등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요양원으로 가기 위해 산을 오르내리고 배를 타고 기차를 타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자신의 행위와 존재에 대해서 점점 더 혼란스러워한다. ‘마의 산으로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어떤 마력의 힘에 이끌리는 것 같다고 주인공은 생각하고, 자칫 그곳을 빠져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주인공은 병과 죽음이 지배하는 요양원에서 하산하여 현실적 삶으로 돌아가 전쟁에 참여한다.

토마스 만이 12년에 걸쳐 집필한 마의 산은 사회적 휴머니즘이라는 토마스 만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많은 독일의 문학가, 철학자들이 히틀러의 광기에 홀려 변절의 길을 가고 있는 동안 토마스 만은 그나마 유일한 독일의 양심이었다.
철학은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도덕적 판단과 관련된 학문이다. 그런데 철학의 나라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홀로크스트와 같은 유대인 대량학설의 광란에 동조했을 뿐 아니라 사상적 근거를 제공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인간의 지성과 양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87>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는 언제 읽어도 난해하고 불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작품들이 후세에 미친 영향때문이다. 니체는 오늘날 유럽에 기독교 문화와 전통은 잔존해 있어도 기독교 신앙은 이미 죽어버리게 만든 가장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이면서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의 모든 기초를 제공했다. 또한 그의 힘의 질서에 의한 초인사상은 히틀러에게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명분과 동기를 제공한 위험한생각이었다. 기독교를 누구보다 가장 강렬하게 비난하고 신의 죽음을 선언했던 니체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의 부친이 개신교 목사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니체 철학의 입문서라고 할 수있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초인사상(위버멘쉬), 권력에의 의지, 영겁회귀등을 니체 철학의 중심을 문학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산에 들어가 홀로 자연을 벗 삼아 깊은 명상의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오만하고 불만이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지혜를 나눠 주어야 겠다고 생각하여 인간 세상으로 내려갔다. 이 세계 저편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는 자들이 하나같이 그러하듯 차라투스트라도 배후 세계에 대한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이 세계는 고뇌와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신의 작품으로 보였다. 그런데 아 형제들이여, 내가 지어낸 이 신은 다른 신들이 모두 그러하듯 사람이 만들어낸 작품에 불과했으며 망상에 불과했다. 신이라고 했지만 사람의 사상과 자아의 빈약한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니체가 주장하는 사신철학은 결국 인류역사에서 모든 종교와 철학이 인간적인 관점을 취함으로 스스로 모순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니체는 신은 있을 수 있어도 기독교가 말하는 인간적이고 선별적인 구원을 하는 편협한 신은 존재할 수 없다며 신의 죽음을 선언했다. 또한 니체는 기독교의 교리는 사람을 약하고 저열하게 만드는 약자의 도덕, 데카당스(퇴패주의)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인간에게는 강자의 논리에 따른 초인지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말 그럴까? 기독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니체는 진정한 힘은 드러나지 않고 절제된 힘(십자가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중대한 실수를 범했다. 어느 대학 철학 강의실에 아래와 같은 낙서가 있었다고 한다

신은 죽었다” –니체
니체는 죽었다” –

사신철학(God is dead)대한 니체의 사상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갑론을박 말들이 많지만, 확실한 사실은 니체는 이미 114년전에 죽었다는 것이다. 루 살로메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후 극심한 정신분열증세를 보여 죽을때까지 10년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있었던 니체가 하나님의 심판대앞에 섰을 때 과연 어떤 표정이었을까?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 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볼 것이기 때문이다.”-니체의 선악을 넘어서 中

니체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오늘날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내가 보는 니체는 괴물을 연구하다가 조심하지 않아 스스로 괴물이 되고 만 가장 괴팍한 철학자였다.

<86> 쇠렌 키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다 죽어도 자신이 언젠간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않다. 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실존의 한계다. 실존주의 사상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덴마크의 철학 사상가 쇠렌 키르케고르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을 절망이라고 정의했다. 암에 걸려 죽는 사람은 암때문에 죽기 전에 절망하기 때문에 죽는다.

키르케고르의 뒤를 이어서 실존주의 사상을 발전시켰던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무신론적, 인본주의적 실존주의사상을 발전시켰지만 실존주의의 시작은 유신론적인 실존주의였다. 키르케고르는 참 된 신앙만이 죽음에 이르는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절망의 반대편에는 소망이라는 단어를 초월한 신앙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키르케고르의 대표작 죽음에 이르는 병 1849년 발표되었으며 데카르트적 인식론 중심의 철학사상을 인간내면에 대한 문제로 전환시킨 사상의 개혁이었다.

1편에서는 절망에 대한 상세한 고찰, 절망의 가능성과 현실성 그리고 절망의 형태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2편에서는 죄의 문제를 다루면서 절망은 죄이며 불신앙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긍극적으로 키르케고르가 정의하고 있는 절망이라는 말은 인간의 자기(自己)가 신()을 떠나서 신을 상실(喪失)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며 그것은 인간의 자기 소외 상태다.

키르케고르가 평생을 사랑했던 여인이있었다. 10살 연하의 레기네라는 여인을 사랑했던 그는 어느날 그대를 너무 사랑하기에 이별한다는 말을 남기고 레기나의 곁을 떠났다. 키르케고르는 그녀를 너무 사랑하지만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떠났고 42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그는 독신으로 살았다. 인간 실존의 문제에 무겁게 매달렸던 실존주의 철학자가 스스로 선택한 삶의 고뇌는 어찌보면 자학적이기까지 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 제목은 키르케고르가 신약성경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요한복음 11:4
키르케고르는 예수가 말하는 죽을 병, 죽음에 이르는 병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묵상하면서 실존주의의 시발점이 된 이 책을 완성했다.

누구나 한번은 레테의 강을 건너야한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죽음의 공포에 떨게하고 어느날 갑자기 주변 사람들 가운데 암에 걸려, 또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현실가운데 사람들은 쉽게 절망한다. 그래서 그 절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또 다른 죽음에 이르게 한다. 역설적인 표현을 좋아했던 키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지만 한편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구도의 길이라는 메세지를 또한 이 책가운데서 전하고 있다. 절망하는 자에게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지만 신앙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죽음은 새로운 시작일뿐이다

예찬출판기획 백승환 대표 (baekstephen@gmail.com)

2014년 11월 16일 일요일

85 프란츠 카프카 <변신>


신의 죽음을 당돌하게 선언한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은 고뇌와 좌절뿐이다. 니체의 사신(死神)철학을 기반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한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은 1,2차 세계대전의 암울한 분위기와 맞물려 극도의 니힐리즘속을 빠져들어간다. 문학에 있어 실존주의란 곧 고아같은 삶을 예정하며 삶의 고독과 분열을 의미한다. 실존주의의 대가 쟝 폴 사르트르나 알베르트 카뮈가 작품가운데 그려낸 부조리사상들도 결국은 이성적으로 깨달을수 없는 인생의 의미를 불합리와 부조리라는 개념속에 맟춰 보려는 힘겨운 몸짖이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이미 목적과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실존주의의 또 다른 대표적인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1세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암울한 서구사회를 배경으로 인간 존재의 자기상실을 깊이 있게 탐구하면서 중편소설 변신을 완성했다. 이 시기는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 과학 문명이 발달되면서 인간의 존엄성은 무시되고 물질적인 만족만을 추구하는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하였고 이에 부합해 합리적인 인간 이성을 강조하며, 국가간에는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세계대전을 향해 치닫고 있던 불안한 때었다.

어느날 아침 그레고르는 뒤숭숭한 꿈자리에서 깨어나보니 자신이 침대속에 한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신해 있는 것을 발견하게된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어떻게 그리고 왜 벌레로 변신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린 황당한 설정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벌레는 비록 몸은 변신했지만 과거의 모든 의식과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자기 내면성찰과 가족들의 반응 그리고 사회의 불합리함을 일인칭 관점에서 기술해 나간다.

세일즈 맨 그레고르는 열심히 일을 하여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헌신적인 청년이었다. 그는 자신의 그런 희생이 가족들에게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왜냐하면 가족들은 그가 어처구니없이 벌레로 변했을 때 그를 냉대하고 죽어버렸으면하고 바라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을 때 오히려 공원으로 피크닉을 나가며 활기찬 모습을 보이기까지한다. 말도 않되는 상황이 현실로 나타난다. 죽음에 대한 그레고르의 동의는 세계에 대한 불안으로 야기된 자신의 고립 의지와 저항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 것이다. 이것을 카프카의 자아분열이라는 공식에 대입해 보면 외부사회에서 지치고 소외된 일상적 삶을 도피하는 방법으로서의 변신은 결국 실패한 것이고 죽음과 타협함으로 순수영역으로 복귀하고 싶다는 타나토스적 욕망이 발동된 것이다.

소망과 목적이 없는 삶은 구태어 변신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어짜피 벌레와 같은 삶이다. 인본주의적 실존주의 입장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외쳐볼 때 남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니체가 주장한 사신철학, 초인사상은 무신론의 극치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또한 인생의 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들은 그렇게 무신론적 인본주의 사상을 탐닉하고 있는것일까? 정말 신은 죽었고 인간도 신처럼 될 수 있다는 창세전부터의 그 거짓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실존주의 문학을 접할 때마다 가슴에 와닫는 본질적인 질문들이다

84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


서정성의 극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삶은 러시아 여인 루 살로메와의 만남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결정됐다. 살로메는 릴케의 시적 영감이었으며 사는 목적이었고 사랑의 화신이었다. 그가 살로메에게 바친 시가운데 구구절절한 사랑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내 눈빛을 꺼주시오 그래도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 내 귀를 막아주시오 그래도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 발 없이도 갈 수 있고 입 없이도 약속할 수 있습니다 / 내 심장을 멈춰주십시오 그러나 뇌가 요동칠 것입니다 / 가슴에 불을 던지신다면 내 피가 당신을 실어 나를 것입니다

살로메와 함께 러시아 여행을 다녀오면서 릴케는 톨스토이와도 교제를 하게 되었고 그의 영향으로 후기에는 기독교적 사상에 입각한 그렇지만 범신론적인 시와 수필들을 완성하게된다. ‘말테의 수기는 릴케의 후기 작품중 하나로 덴마크 귀족 출신의 젊은 시인 말테의 입을 빌려 파리에서 도시인의 삶과 죽음, 불안에 떠는 유한자의 생활을 수기 형태로 쓴 글이다. 통일된 줄거리 없이 여러가지 주제들 즉, 파리에서의 생활, 죽음, 시인과 고독, 사랑, , 그리고 탕아의 전설등 54개 단락으로 이뤄진 단편수기 모음집이면서 전체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관찰을 감수성이 철철넘치는 릴케만의 독특한 필체로 그려나가고 있다.

때로는 하늘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죽음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본다.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을 그보다도 먼저 처리해야 할 다른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밀쳐두엇기 때문에 우리가 바쁘게 몰두하고 있는 곳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다. 이제 시간을 흘러가버렸고 그리하여 우리는 하찮은 일들에 익숙해져 버렸다. 우리는 우리의 귀중한 것을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되었다

말테라는 젊은 시인의 눈을 통해 본 릴케의 세상은 너무도 절박하고 안타까운 그렇지만 가슴 후비는 아름다운을 절절하게 간직하고 살아가는 그런 것이다. 파리라는 대도시의 번잡스러움속에 가려진 비참한 인간의 마음들, 병원 담벼락 뒤에 감추어진 고통, 비명들, 얼굴속에 감취진 눈물들 그리고 세월을 느끼게 하는 독특한 냄새, 향기그 모든 것들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릴케의 필치는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을이 깊어가고 있는 이 즈음에 다시 한번 삶의 의미를 고뇌하게한다.

릴케가 사랑했던 러시아 여인 루 살로메는 당대에 여러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독특한 여인으로 유명하다. 릴케를 만나기 전에 살로메는 철학자 니체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그가 청혼까지 했지만 퇴짜를 놓았고, 그후에는 정신분석 심리학자 프로이드도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 사랑했던 천재들은 하나같이 자살, 정신분열증, 릴케의 경우는 장미가시에 찔려 파상풍으로 종말을 맞았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치명적인 여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팜무파탈(Female of Fatal) 살로메라는 별명이 주어졌다. 혹시 저 천재들이 살로메와 사랑을 나누는 대가로 파우스트처럼 자신들을 영혼을 담보로 잡혔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성경가운데 등장하는 살로메는 헤롯왕앞에서 농염한 춤을 춘 댓가로 세례요한의 목을 자르게 했던 헤로디아의 딸로 알려져있어 이 또한 팜무파탈의 실체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든다.  

83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는 이 소설로 인해서 너무 일찍 유명세를 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완성히 발표한 해가 1774년이었으니까 그의 나이 25세되던 해였다. 괴테는 임자가 있는 여인 샤를로테 부프와의 고달픈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같은 시기에 가까운 친구가 자살해 큰 충격에 빠졌다. 이 두가지 연쇄적인 개인경험을 토대로 만든 소설이 바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괴테는 이 소설 한권으로 일약 유명 소설가가 되었지만 오히려 그의 창작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천재적인 작가로서 성공이후 깊은 슬럼프에 빠졌던 것이다. 15년정도 공백기간을 지나 나이 40에 들어서면서 이탈리아 기행을 통해 괴테는 다시 한번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일생의 대작 파우스트를 구상하고 말년에 이를 완성을 하게된다.

연애소설의 대명사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절은 청년 베르테르의 편지와 자필 메모, 그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보고등을 모아 묶은 형식으로 되어있다.
조용한 자연에 묻혀서 우울증을 치료할 목적으로 베르테르라는 청년이 어느 아름다운 산간 마을에 찾아 든다. 베르테르는 마을 무도회에서 멋진 춤솜씨를 가진 쾌활한 여인 로테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운명적인 사랑을 예감하게 된다. 로테와 친해진 베르테르는 그녀에게 약혼자 알베르트의 이야기를 듣고는 의기 소침해진다. 한편 일 때문에 도시로 나가 있던 알베르트가 돌아오게 되고, 베르테르는 그만 깊은 실의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그는 감정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채 로테를 위해서 알베르트와 친분 관계를 맺는다

어느 날 그 둘은 자살에 관한 찬반 양론을 놓고 심한 논쟁을 벌이게 되고, 결과와 형식만을 중시하는 알베르트가 로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안타까움만을 베르테르에게 안겨 준다. 한동안 여행에서 돌아온 베르테르에게 알베르트와 로테가 결혼했다는 절망적인 소식만이 들리고 다시 만난 로테는 왠지 그에게 차갑기만 하다. 그러나 서먹했던 관계도 잠시뿐 그들은 다시 예전처럼 다정한 사이가 되어 시와 음악으로 서로의 감성을 교류한다.마지막으로 로테를 찾아간 베르테르는 억제할 수 없는 감정에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로테는 작별 인사만을 건넨다. 실의에 빠진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 호신용 권총을 빌려 그 총을 가지고 목숨을 끊고 만다.

나폴레옹은 괴테의 이 소설을 너무도 좋아해 여러차례 반복해서 읽었고 한번은 괴테를 궁으로 초대해 소설은 다 좋은데 결말부분이 좀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하자 괴테는 황제를 만족시킬 결말은 계속 진행중인것으로 알고있다라며 나폴레옹의 전쟁을 응근히 추켜세운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진보를 믿는 계몽주의자의 입장에 서있던 괴테는 당시 나폴레옹을 찬양하며 나의 황제라고까지 부르기도했다.

노란샤츠와 푸른 망토는 청년 베르테르의 상징이다. 소설이 발표된 후 많은 청년들이  노란샤츠를 입고 베르테르와 같은 비극적인 열정에 빠져들어갔고 많은 이들이 유사 자살을 하기도 해 한동안 베르테르 신드롬이 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82 니콜라이 고골 <검찰관>


제정 러시아의 소설가 니콜라이 고골은 1809년 우크라이나에서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연극을 좋아해 극작가와 감독, 배우를 겸할 정도로 재능이 풍부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신앙심이 깊고 공상을 좋아하는 여성이어서 고골은 아버지로 부터는 문학적 재능을 어머니로 부터는 신앙심을 이어받았다. 그는 소년시절을 전설이나 민화,, 재미있는 유머,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여 지냈으며 13세때 이미 문학과 연극에서 재능을 보여 스스로 만든 희곡으로 연극을 하기도하고 회람 잡지를 발행하기도 하는 천재성을 보였다.

러시아의 일그런진 사회실상을 통렬하게 비판한 사화풍자극 검찰관을 발표한 뒤 27세때 고골은 반동파의 맹렬한 비난을 받아 한동안 이탈리아로 피신을 했고, 그곳에서 장편 죽은 혼을 완성했다. 이 무럽부터 고골은 문학과 종교의 분열 그리고 사회참여의 현실문제로 고뇌하게 되었고, 정신적인 안정을 잃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검찰관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주류인 비판적 리얼리즘의 원류가 된 대표적인 사회풍자극이며 그 소재는 푸슈킨에게서 얻은 것이다. 한편 비슷한 시기의 대표적인 러시아 작가 그룹인 뚜르게니예프, 톨스토이 그리고 도스토엡스키가 기독교 신앙에 근본을 본 고전적 낭만주의의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던 것과는 좀 대조적인 면을 보였다.   

검찰관희극의 무대는 러시아의 작은 지방도시다. 그 도시에는 난폭하고 뇌물을 좋아하는 시장과 멍청한 관리들이 지배하고 있어 뿌리까지 송두리 썩은 당시 여느 러시아 소도시의 전형적인 모델같은 곳이다. 어느날 수도 중앙관청에서 검찰관이 행정 시찰을 위해 이 마을에 비밀리에 파견된다는 소문 때문에 야단 법석을 피우고 있을 때 홀레스타코프라는 낯선 젊은이가 여관에 투숙을 하게된다. 사실 이 남자는 도박과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모두 날린 뒤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동네 사람들은 이 남자가 암행을 하는 검찰관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러자 어리석은 시장은 이 청년을 자기 집으로 정중히 초대해 멋진 파티를 열어주고 뇌물까지 안기며 극직하게 귀빈대접을 한다. 이 와중에 청년은 바람기를 발동해 시장의 딸을 농락하고 결혼해서 자기와 도망하자고 제안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본분은 사기꾼인 것을홀레스타코프는 뜻하지 않은 선물과 돈으로 주머니가 두둑해 지자 가짜라는 사실이 발각되기 전에 슬며시 도망한다. 얼마후 진짜 검찰관이 마을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모든 사람들은 그 동안있던 던 일들에 대해 아연실색하게된다

눈물을 통한 웃음이라고 이야기되는 고골의 이런 풍자기법은 이 책에서 속물적인 인간본성을 다루고 있다. 마을사람들에게 어숩지않게 검찰관으로 인정받은 주인공이 보여주는 허영과 자만은 우스꽝스러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내재한 본성적인 속물근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진짜로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깡통같은 인간이지만 때로는 그렇게 허풍과 허영가운데 사람들앞에 서기를 원하는 보통사람들의 검춰진 속마음을 그렸던 것이다. 이 작품의 영향으로 러시아에서는 홀레스타코프시치나라는 신조어가 생겨 지금까지도 이 단어는 허풍과 자만을 뜻하는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