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6일 일요일

85 프란츠 카프카 <변신>


신의 죽음을 당돌하게 선언한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은 고뇌와 좌절뿐이다. 니체의 사신(死神)철학을 기반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한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은 1,2차 세계대전의 암울한 분위기와 맞물려 극도의 니힐리즘속을 빠져들어간다. 문학에 있어 실존주의란 곧 고아같은 삶을 예정하며 삶의 고독과 분열을 의미한다. 실존주의의 대가 쟝 폴 사르트르나 알베르트 카뮈가 작품가운데 그려낸 부조리사상들도 결국은 이성적으로 깨달을수 없는 인생의 의미를 불합리와 부조리라는 개념속에 맟춰 보려는 힘겨운 몸짖이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이미 목적과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실존주의의 또 다른 대표적인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1세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암울한 서구사회를 배경으로 인간 존재의 자기상실을 깊이 있게 탐구하면서 중편소설 변신을 완성했다. 이 시기는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 과학 문명이 발달되면서 인간의 존엄성은 무시되고 물질적인 만족만을 추구하는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하였고 이에 부합해 합리적인 인간 이성을 강조하며, 국가간에는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세계대전을 향해 치닫고 있던 불안한 때었다.

어느날 아침 그레고르는 뒤숭숭한 꿈자리에서 깨어나보니 자신이 침대속에 한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신해 있는 것을 발견하게된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어떻게 그리고 왜 벌레로 변신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린 황당한 설정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벌레는 비록 몸은 변신했지만 과거의 모든 의식과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자기 내면성찰과 가족들의 반응 그리고 사회의 불합리함을 일인칭 관점에서 기술해 나간다.

세일즈 맨 그레고르는 열심히 일을 하여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헌신적인 청년이었다. 그는 자신의 그런 희생이 가족들에게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왜냐하면 가족들은 그가 어처구니없이 벌레로 변했을 때 그를 냉대하고 죽어버렸으면하고 바라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을 때 오히려 공원으로 피크닉을 나가며 활기찬 모습을 보이기까지한다. 말도 않되는 상황이 현실로 나타난다. 죽음에 대한 그레고르의 동의는 세계에 대한 불안으로 야기된 자신의 고립 의지와 저항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 것이다. 이것을 카프카의 자아분열이라는 공식에 대입해 보면 외부사회에서 지치고 소외된 일상적 삶을 도피하는 방법으로서의 변신은 결국 실패한 것이고 죽음과 타협함으로 순수영역으로 복귀하고 싶다는 타나토스적 욕망이 발동된 것이다.

소망과 목적이 없는 삶은 구태어 변신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어짜피 벌레와 같은 삶이다. 인본주의적 실존주의 입장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외쳐볼 때 남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니체가 주장한 사신철학, 초인사상은 무신론의 극치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또한 인생의 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들은 그렇게 무신론적 인본주의 사상을 탐닉하고 있는것일까? 정말 신은 죽었고 인간도 신처럼 될 수 있다는 창세전부터의 그 거짓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실존주의 문학을 접할 때마다 가슴에 와닫는 본질적인 질문들이다

84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


서정성의 극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삶은 러시아 여인 루 살로메와의 만남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결정됐다. 살로메는 릴케의 시적 영감이었으며 사는 목적이었고 사랑의 화신이었다. 그가 살로메에게 바친 시가운데 구구절절한 사랑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내 눈빛을 꺼주시오 그래도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 내 귀를 막아주시오 그래도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 발 없이도 갈 수 있고 입 없이도 약속할 수 있습니다 / 내 심장을 멈춰주십시오 그러나 뇌가 요동칠 것입니다 / 가슴에 불을 던지신다면 내 피가 당신을 실어 나를 것입니다

살로메와 함께 러시아 여행을 다녀오면서 릴케는 톨스토이와도 교제를 하게 되었고 그의 영향으로 후기에는 기독교적 사상에 입각한 그렇지만 범신론적인 시와 수필들을 완성하게된다. ‘말테의 수기는 릴케의 후기 작품중 하나로 덴마크 귀족 출신의 젊은 시인 말테의 입을 빌려 파리에서 도시인의 삶과 죽음, 불안에 떠는 유한자의 생활을 수기 형태로 쓴 글이다. 통일된 줄거리 없이 여러가지 주제들 즉, 파리에서의 생활, 죽음, 시인과 고독, 사랑, , 그리고 탕아의 전설등 54개 단락으로 이뤄진 단편수기 모음집이면서 전체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관찰을 감수성이 철철넘치는 릴케만의 독특한 필체로 그려나가고 있다.

때로는 하늘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죽음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본다.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을 그보다도 먼저 처리해야 할 다른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밀쳐두엇기 때문에 우리가 바쁘게 몰두하고 있는 곳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다. 이제 시간을 흘러가버렸고 그리하여 우리는 하찮은 일들에 익숙해져 버렸다. 우리는 우리의 귀중한 것을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되었다

말테라는 젊은 시인의 눈을 통해 본 릴케의 세상은 너무도 절박하고 안타까운 그렇지만 가슴 후비는 아름다운을 절절하게 간직하고 살아가는 그런 것이다. 파리라는 대도시의 번잡스러움속에 가려진 비참한 인간의 마음들, 병원 담벼락 뒤에 감추어진 고통, 비명들, 얼굴속에 감취진 눈물들 그리고 세월을 느끼게 하는 독특한 냄새, 향기그 모든 것들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릴케의 필치는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을이 깊어가고 있는 이 즈음에 다시 한번 삶의 의미를 고뇌하게한다.

릴케가 사랑했던 러시아 여인 루 살로메는 당대에 여러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독특한 여인으로 유명하다. 릴케를 만나기 전에 살로메는 철학자 니체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그가 청혼까지 했지만 퇴짜를 놓았고, 그후에는 정신분석 심리학자 프로이드도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 사랑했던 천재들은 하나같이 자살, 정신분열증, 릴케의 경우는 장미가시에 찔려 파상풍으로 종말을 맞았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치명적인 여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팜무파탈(Female of Fatal) 살로메라는 별명이 주어졌다. 혹시 저 천재들이 살로메와 사랑을 나누는 대가로 파우스트처럼 자신들을 영혼을 담보로 잡혔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성경가운데 등장하는 살로메는 헤롯왕앞에서 농염한 춤을 춘 댓가로 세례요한의 목을 자르게 했던 헤로디아의 딸로 알려져있어 이 또한 팜무파탈의 실체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든다.  

83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는 이 소설로 인해서 너무 일찍 유명세를 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완성히 발표한 해가 1774년이었으니까 그의 나이 25세되던 해였다. 괴테는 임자가 있는 여인 샤를로테 부프와의 고달픈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같은 시기에 가까운 친구가 자살해 큰 충격에 빠졌다. 이 두가지 연쇄적인 개인경험을 토대로 만든 소설이 바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괴테는 이 소설 한권으로 일약 유명 소설가가 되었지만 오히려 그의 창작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천재적인 작가로서 성공이후 깊은 슬럼프에 빠졌던 것이다. 15년정도 공백기간을 지나 나이 40에 들어서면서 이탈리아 기행을 통해 괴테는 다시 한번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일생의 대작 파우스트를 구상하고 말년에 이를 완성을 하게된다.

연애소설의 대명사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절은 청년 베르테르의 편지와 자필 메모, 그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보고등을 모아 묶은 형식으로 되어있다.
조용한 자연에 묻혀서 우울증을 치료할 목적으로 베르테르라는 청년이 어느 아름다운 산간 마을에 찾아 든다. 베르테르는 마을 무도회에서 멋진 춤솜씨를 가진 쾌활한 여인 로테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운명적인 사랑을 예감하게 된다. 로테와 친해진 베르테르는 그녀에게 약혼자 알베르트의 이야기를 듣고는 의기 소침해진다. 한편 일 때문에 도시로 나가 있던 알베르트가 돌아오게 되고, 베르테르는 그만 깊은 실의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그는 감정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채 로테를 위해서 알베르트와 친분 관계를 맺는다

어느 날 그 둘은 자살에 관한 찬반 양론을 놓고 심한 논쟁을 벌이게 되고, 결과와 형식만을 중시하는 알베르트가 로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안타까움만을 베르테르에게 안겨 준다. 한동안 여행에서 돌아온 베르테르에게 알베르트와 로테가 결혼했다는 절망적인 소식만이 들리고 다시 만난 로테는 왠지 그에게 차갑기만 하다. 그러나 서먹했던 관계도 잠시뿐 그들은 다시 예전처럼 다정한 사이가 되어 시와 음악으로 서로의 감성을 교류한다.마지막으로 로테를 찾아간 베르테르는 억제할 수 없는 감정에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로테는 작별 인사만을 건넨다. 실의에 빠진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 호신용 권총을 빌려 그 총을 가지고 목숨을 끊고 만다.

나폴레옹은 괴테의 이 소설을 너무도 좋아해 여러차례 반복해서 읽었고 한번은 괴테를 궁으로 초대해 소설은 다 좋은데 결말부분이 좀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하자 괴테는 황제를 만족시킬 결말은 계속 진행중인것으로 알고있다라며 나폴레옹의 전쟁을 응근히 추켜세운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진보를 믿는 계몽주의자의 입장에 서있던 괴테는 당시 나폴레옹을 찬양하며 나의 황제라고까지 부르기도했다.

노란샤츠와 푸른 망토는 청년 베르테르의 상징이다. 소설이 발표된 후 많은 청년들이  노란샤츠를 입고 베르테르와 같은 비극적인 열정에 빠져들어갔고 많은 이들이 유사 자살을 하기도 해 한동안 베르테르 신드롬이 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82 니콜라이 고골 <검찰관>


제정 러시아의 소설가 니콜라이 고골은 1809년 우크라이나에서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연극을 좋아해 극작가와 감독, 배우를 겸할 정도로 재능이 풍부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신앙심이 깊고 공상을 좋아하는 여성이어서 고골은 아버지로 부터는 문학적 재능을 어머니로 부터는 신앙심을 이어받았다. 그는 소년시절을 전설이나 민화,, 재미있는 유머,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여 지냈으며 13세때 이미 문학과 연극에서 재능을 보여 스스로 만든 희곡으로 연극을 하기도하고 회람 잡지를 발행하기도 하는 천재성을 보였다.

러시아의 일그런진 사회실상을 통렬하게 비판한 사화풍자극 검찰관을 발표한 뒤 27세때 고골은 반동파의 맹렬한 비난을 받아 한동안 이탈리아로 피신을 했고, 그곳에서 장편 죽은 혼을 완성했다. 이 무럽부터 고골은 문학과 종교의 분열 그리고 사회참여의 현실문제로 고뇌하게 되었고, 정신적인 안정을 잃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검찰관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주류인 비판적 리얼리즘의 원류가 된 대표적인 사회풍자극이며 그 소재는 푸슈킨에게서 얻은 것이다. 한편 비슷한 시기의 대표적인 러시아 작가 그룹인 뚜르게니예프, 톨스토이 그리고 도스토엡스키가 기독교 신앙에 근본을 본 고전적 낭만주의의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던 것과는 좀 대조적인 면을 보였다.   

검찰관희극의 무대는 러시아의 작은 지방도시다. 그 도시에는 난폭하고 뇌물을 좋아하는 시장과 멍청한 관리들이 지배하고 있어 뿌리까지 송두리 썩은 당시 여느 러시아 소도시의 전형적인 모델같은 곳이다. 어느날 수도 중앙관청에서 검찰관이 행정 시찰을 위해 이 마을에 비밀리에 파견된다는 소문 때문에 야단 법석을 피우고 있을 때 홀레스타코프라는 낯선 젊은이가 여관에 투숙을 하게된다. 사실 이 남자는 도박과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모두 날린 뒤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동네 사람들은 이 남자가 암행을 하는 검찰관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러자 어리석은 시장은 이 청년을 자기 집으로 정중히 초대해 멋진 파티를 열어주고 뇌물까지 안기며 극직하게 귀빈대접을 한다. 이 와중에 청년은 바람기를 발동해 시장의 딸을 농락하고 결혼해서 자기와 도망하자고 제안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본분은 사기꾼인 것을홀레스타코프는 뜻하지 않은 선물과 돈으로 주머니가 두둑해 지자 가짜라는 사실이 발각되기 전에 슬며시 도망한다. 얼마후 진짜 검찰관이 마을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모든 사람들은 그 동안있던 던 일들에 대해 아연실색하게된다

눈물을 통한 웃음이라고 이야기되는 고골의 이런 풍자기법은 이 책에서 속물적인 인간본성을 다루고 있다. 마을사람들에게 어숩지않게 검찰관으로 인정받은 주인공이 보여주는 허영과 자만은 우스꽝스러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내재한 본성적인 속물근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진짜로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깡통같은 인간이지만 때로는 그렇게 허풍과 허영가운데 사람들앞에 서기를 원하는 보통사람들의 검춰진 속마음을 그렸던 것이다. 이 작품의 영향으로 러시아에서는 홀레스타코프시치나라는 신조어가 생겨 지금까지도 이 단어는 허풍과 자만을 뜻하는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81 괴테 <파우스트>


아름다운 것을 보면 슬퍼진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언젠가는 안개처럼 사라지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만이 가치있고 아름답다. 그런데 영혼만이 영원하다. 자신의 영혼을 담보로 잡히고 영원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을 채우기 원했던 파우스트 교수는 어찌면 순간적인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영원한 것을 잃어 버리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현주소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질풍노도시대(독일의 낭만주의 문학운동)로부터 출발하여 고전주의를 거처 만년의 완성기에 이르는 괴테의 전 생애 즉, 그의 모든 인생체험과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의 방황, 갈등, 구원의 문제를 다룬 대작이다. 인간은 자기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더 많은 것을 체험하고 더 많은 쾌락을 누려보기 위해 발보둥치지만 결국 영혼을 잃어버리면 다 끝난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끝까지 노력하는 자는 하늘의 자비에 의해 구원될 수 있다는 인본주의적 구원관을 작품가운데 반영하고 있다.

파우스트 1부는 우주와 인간존재 규명의 학문적 노력에 회의를 느끼고 땅 위의 쾌락에 빠지고 싶어하는 파우스트에게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영혼을 담보로 세상의 모든 쾌락과 지식을 주기로 약속한다. 조건은 파우스트가 향락에 빠져서 더 이상 노력을 멈추고 만족해 순간아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하면 그 때 악마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잡아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악마의 도움으로 젊음을 회복한 파우스트는 순진한 처녀 그레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진실한 사랑을 혐오하는 악마의 농간으로 파우스트는 그레첸과 육체관계를 맺고 그레첸은 임신하게 되어 사생아를 살해한 죄로 감옥에 갇힌다. 2부에서 파우스트는 악마와 신성로마제국의 궁전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미의 여신 헬레네을 사랑하게 된 파우스트는 그녀와 결혼하여 오이포리온이라는 아들을 낳는다.하지만 미적 탐닉으로 이루지 못한 만족을 이제는 인류사회의 공익을 위한 자신의 헌신적 노력으로 얻으려한다. 황제로부터 광대한 습지를 받아 개간하여 만인을 위한 옥토로 만들어 보려는 의욕에 불탄다. 이제 곧 완성될 새 땅에 오곡이 무르익고 만백성이 살아갈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한 만족감에 파우스트는 이렇게 노래한다.

자유도 생명도 싸워서 차지하는 자만이 / 그것을 누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 나는 그러한 인간의 집단을 바라보며 /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함께 살고 싶은 것이다 / 그렇게 되면 나는 순간을 향하여 / 이렇게 부르짖어도 좋을 것이다 / 멈춰라 순간이여, 너는 진정 아름답구나! 라고…”

그 순간 악마는 당연히 이제 파우스트의 영혼을 잡아가려는데,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항상 노력하는 자는 우리가 구원할 수 있다며 파우스트의 영혼을 악마로부터 보호하고 그의 시체위에 꽃송이를 뿌린다.      

괴테가 표현한 구원관은 전통적인 기독교 구원론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문학작품이지 신학서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영혼 구원론을 가지고 왈가불가할 필요는 없다. 단지 괴테는 인본주의적 구원의 방법 즉,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존재이며, 참된 인간은 잠시 어두운 충동에 동요할 지라도 옳은 길을 망각하지 않는 법이다라는 구도자적 자세의 중요성을 후세에 깊이 남겼다.

80 도스토옙스키 <백치>


도스토엡스키와 톨스토이는 19세기 거의 같은 시대에 태어나 러시아 문학을 세계무대의 중심에 올려놓은 대표적인 작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출생신분과 삶의 모습은 크게 달랐다. 귀족가문에서 태어나서 상당한 재산을 상속받아 평생을 돈 걱정하지 않으며 고상하게 그리고 존경가운데 살았던 톨스토이와 달리 도스토엡스키의 삶은 그 자체가 인생 막장 드라마였다. 도박중독, 가난, 질병 그리고 사형수에서 극적으로 감형돼 시베리아 노동소에서 7년동안 노동을 했고 작가로 알려지게 된 후에는 빛을 갚기 위해서 그날 그날 글을 써야했던 고단한 운명이었다
그래서 두 작가 모두 기독교 신앙을 정수로 한 인간 구원의 문제들을 대표적인 소설 주재로 다루고 있지만 도스토엡스키는 죄와벌’’악령그리고 백치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드라마틱한 상황에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 가운데 오만한 인간이 벌을 받고 구원을 갈구하는 삶을 조명하고 있다.

소설 백치(白痴, Idiot)는 세상사람들의 눈에 바보같이 보이는 주인공 뮈쉬낀의 순수한 마음을 통해 계산 빠르고 똑똑한 사람들의 삶과 사랑의 부조리함을 지적하고있다. 뮈쉬낀은 귀족가문의 자손이지만 정신적으로 좀 부족해 주위로 부터 백치, 바보라고 놀림을 받을 정도로 어리숙한 사람이다. 반면 혈기와 욕정으로 가득한 로고진은 뻬제부르그에서 아름다운 여인 나스챠를 유혹해 정부로 농락하고 있다. 나스챠는 어린 나이부터 시련을 겪고 색욕가들에게 찟기고 능욕을 당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보같지만 한없이 착하고 순수한 뮈쉬낀을 알게되면서 호감을 갖게된다. 그러나 자신같이 더렵혀진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오히려 친구 아글라야를 뮈쉬낀에게 소개한다

이렇게 4사람의 4각관계가 복잡하게 진행되면서 한편으로 나스챠에 대한 동정심으로 가득찬 뮈쉬낀이 나스챠에게 청혼을 하고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정하지만 자책감에 사로잡힌 나스챠가 결혼식장에서 본심과는 상관없이 나쁜 남자 로고진과 도망하게된다. 하지만 그녀의 본심을 알게된 로고진은 나스챠의 가식적인 선택에 배신감을 느끼고 잔인하게 살해한다. 그 살해 현장의 자리에 바보같이 나타난 뮈쉬낀은 나스챠의 시체를 옆에 두고 로고진과 나스챠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나누며 새벽을 맞이한다

때로는 바보같이 멍청한 삶이 똑똑하고 계산 빠른 삶보다 더 많은 교훈과 깊은 감동을 던져준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현대판 백치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뮈쉬낀의 현대적인 모습이고 그의 영원한 연인 제니는 소설가운데 나스챠의 캐랙터와 일치한다. 포레스트 검프 영화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이유는 톰 행스가 열연한 주인공 포레스트의 멍청하지만 순수한 모습, 그리고 자신이 알고있는 것에 외골수로 매달리는 집착, ‘문제가 있을 때는 무조건 열심히 달리라는 제니의 말을 기억하고 3년동안 달리기로 대륙횡단을 하는 그런 단순함에 사람들은 가슴 뭉클해지는 숭고한 감동을 받게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발보둥치는 치열한 삶을 살다가 피곤해 질 때 사람들은 뮈쉬낀, 또는 포레스트 검프의 삶과 같이 백치와 같은 삶에 오히려 깊은 동경을 품게 된다.

79 톨스토이 <크로이체르 소나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참으로 다양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다. 그의 삶과 작품속에 녹아있는 인간톨스토이의 모습은 성()과 속()사이를 방황하다 어느 한쪽에도 확실하게 귀의(歸意)하지 못하고 귀족출신으로 부족한 것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말년은 기차역에서 노숙자처럼 쓸쓸하게 죽어간 허망한 것이었다. 기독교의 진리에 심취해 자기부정과 절제를 위해서 노년에는 채식주의자가 되었지만 어느날 밤 너무도 고기가 먹고 싶어 콜밧사(러시안 소세지)를 한 조각 배어먹고 자기의 나약함에 통곡을 했던 사람이 인간 톨스토이였다.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악성 베토벤이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클래식인데 이 음악 연주를 들으며 톨스토이는 열정적인 정사(情事)장면을 연상하면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서로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긴박한 연주를 펼치는 선율, 그리고 듀오로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피차간에 함몰한 모습을 보면서 경건생활을 추구했던 톨스토이는 한순간 경망한 성적 상상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갔다.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출판직후 한 동안 금서였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인해 톨스토이는 정교에서 출교조치를 당했다. 이유는 그 당시 기준으로 봤을때 너무도 노골적인 성묘사 때문이었다.

주인공 포즈드니세프는 피아노 연주자인 아내가 다른 남자와 열정적으로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연주하는 모습에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낀다. 그래서 아내의 행적을 뒷조사해보니 역시 상상했던데로 바이올리니스트와 불륜의 관계에 있던 것을 확인한 후 아내를 살해한다. 아내에게는 자신의 성적쾌락을 위한 도구, 그리고 정숙함만을 요구했던 포즈드니세프는 아내의 삶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모든 것이 자신에게 종속되야한다는 전형적인 마초 스타일의 인간이었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포즈드네세프라는 주인공을 통한 액자구성의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써나가면서 결국은 자신이 포즈드네세프라는 자각을 하게된다. 자신의 불행했던 결혼생활, 젊은 시절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열정들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을 갖게되면서 자전적인 소설을 써내려갔던 것이다.   
“…흔히들 사랑이라 부르는 시기와 동시에 일어나는 증오의 시기를 겪었던 셈이지요. 정열적인 사랑의 시기는 매우 긴 증오의 시기였고, 미적지근한 사랑의 시기는 짧은 증오의 시기였던 겁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이 사랑과 증오가 동물의 그것과 똑같지만 그 결과만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中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들, “사람에게는 얼마의 땅이 필요한가””참회록”“인생독본과 같은 작품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인생을 지혜롭게 살기위해 필요한 깨달음을 들려주는 현자(賢者)의 소리다. 하지만 적어도 이 작품,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 드러나는 톨스토이의 모습은 평생 질투와 육적 욕망에 시달리며 번뇌했던 야누스의 이면이다. 그러나 누가 그런 톨스토이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오히려 그는 그만큼 인생을 치열하게 살면서 인생의 문제를 부등켜 앉고 소설을 통해 인간의 문제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톨스토이의 위대함은 바로 나약함에 있다.

78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서유럽의 분위기가 마치 가는 붓으로 정교하게 그린 유화(油畵)와 같은 것이라면 동유럽은 큰 붓으로 대강 그려놓은 수채화(水彩畵)와 같은 대조적인 분위기다. 수채화의 부드러운 타치를 좋아하기 때문인지 나는 유럽의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서유럽쪽보다는 동유럽의 문화와 분위기를 더 선호한다

동유럽 체코에서 1968년에 일어난 민주화운동은 슬로바키아의 개혁파 알렉산드르 둡체크가 집권하면서 시작되었지만 불과 6개월후 소련의 군사개입으로 인해서 막을 내렸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개혁은 그렇게 프라하의 봄처럼 잠시왔다 사라진 일장춘몽과 같은 사건이었다.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은 체코의 민주화 개혁, 프라하의 봄을 시대적 배경으로한 소설이다. 삶의 모든 것을 아주 가볍게 여기는 토마시와 사비나라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대조적으로 삶의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고민하며 무겨운 비중으로 받아들이는 테레자와 프란츠가 주인공이다. 이 대조적인 성격의 두 커플을 통해서 작가는 시대적으로 좌절하고 고민하는 체코 지식인들의 삶과 사랑을 수채화처럼 그려냈다

토마시는 테레사를 사랑하면서도 세상의 모든 여자와 잠을 자려는 듯한 섹스 중독자다. 한때는 잘나가는 외과의사였지만 소련의 체코 침공이후 스위스로 잠시 피신했다가 의사 자격까지 상실하게 된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존재의 이유는 섹스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삶을 무겁게 살고 싶지 않아 늘 무책임하고 가벼운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바로 책임지지 않고 그저 순간 순간 감정에만 충실하며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의 자세를 비꼬는 표현이다. 한편 사비나와 프란츠 커플은 꺼꾸로 남자인 프란츠는 신중하고 진지하게 관계를 이어가기 원하지만 여자인 사비나가 부담스러워하며 프란츠를 떠난다. 사비나는 살아가는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말을 프란츠에게 남긴다.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파르메니데스의 성찰즉 그것은 삶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일 것인가하는 개인적인 인생관과 직관된다. 밀란 쿤데라의 삶에 대한 지적인 문장들은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성찰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진정한 정수는 해갈해 주지 않는다. 인간의 관계안에서 솟아오르는 존재론적인 물음들은 그 어느 것 하나 명확하지 않다. 다만 그의 소설은 끊임없이 가볍지 않은 가벼움으로 포장되었으며 그것은 그 자체로 보통사람들의 인생과 비슷하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한다 /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 한탄할 그 무엇이 있어서 /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무거움을 의식적으로 부정하기 위한 가벼움의 몸짓이지만 결국 그로인해서 잡지의 표지와 같이 통속적인 삶은 인생의 무거운 고뇌와 번민가운데로 빠져들게한다

77 알렉스 헤일리 <뿌리>


미국의 흑인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Roots)와 흑인영가를 알아야한다. 신문기자 출신의 알렉스 헤일리는 자신의 외가쪽 혈통을 추적해 10년동안 수십번 아프리카와 미국땅을 오가며 불후의 명작 뿌리 1976년도에 완성했다. 이듬해 TV드라마로 제작 방영되면서 뿌리의 주인공 쿤타킨테는 흑인노예의 대명사가 되었다. 3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쿤타킨테의 두툼한 입술, 반항과 좌절속에 번득이던 그의 큰 눈망울이 눈에 선하다.

아프리카 조그만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17세의 쿤타킨테는 어느날 북을 만들기 위한 나무를 베러 숲으로 들어갔다가 노예상에게 노획되는 운명이된다. 이때 더욱 가슴이 아픈 사실은 쿤타킨테를 직접 잡는 사람들이 백인들이 아니라 같은 흑인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백인들은 얼마간의 흑인들을 앞잡이로 고용해 다른 흑인들을 동물 잡듯이 잡아 노예선에 강제로 실은 후 3달동안 대서양을 건너와 배설물 토해내듯이 흑인들을 노예시장에 쏟아 놓았다. 한 인간의 운명이 동물로 전락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미국 흑인의 한 맺힌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고의 작품이다. 소설 엉클톰스캐빈1861년 미국남북전쟁을 시작하게 한 촉매제의 역할을 한 작품이었다면, 1백여년이 지난 후 알렉스 헤일리가 쓴 뿌리는 흑인 노예 역사의 깊은 상처를 대중문학으로 노출시킴으로 인해서 본격적인 힐링이 시작되게 하였고, 그리하여 한 세대가 지난 후 미국에서 흑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게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독교 국가로 세워진 미국이 노예제도를 수용하고, 또 한편으로는 수 많은 인디안들을 대량학살한 역사적인 사실은 인간의 역사 자체가 모순 덩어리라는 점을 그대로 입증하고 있다. 소설가운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백인 주인이 검은 노예에게서 아들이 태어나자 성경책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주님의 은총으로 튼튼한 노예가 하나 더 늘었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 있다많은 경우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와 사랑은 타락한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인해 너무도 쉽게 외곡되고 있다.

흑인노예들이 미국에 끌려와 알게된 기독교 신앙은 병주고 약주는 모양새였다. 흑인들은 온갖 유린을 당하면서 한편으로 주인들이 믿고 있는 기독교 신앙을 알게되었고 오직 삶의 희망은 하나님에게 달려있다는 진실을 깨닫게된다. 그래서 고난과 고통가운데 그들은 흑인영가로 불리는 한()이 서린 노래들을 부르며 위로를 받았다. 잘 알고 있는 “Swing low, Sweet Chariot”라는 영가의 가사는 이렇다.
사랑스런 마차여 나를 고향으로 데려다오 / 나는 요단강을 건너서 본향을 바라보네 / 만약 당신이 나보다 먼저 그곳에 간다면 / 내 친구들에게 전해주오 / 나도 금방 그곳에 갈 것이라고 / 때로는 기쁜날도 있고 슬픈날도 있지만 / 내 영혼은 늘 하늘에 속해있기를 바라오…”  흑인노예들은 땡볓이 내리쬐는 목화밭에서 노동을 할 때 이런 흑인 영가를 부르며 언젠가는 육의 고통을 벗어버리고 영의 세계로 들어가기를 소망하면서 하루 하루 연명했었다.  

76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사랑하는 친구가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이제 겨우 하늘의 뜻을 알게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들어섰을 뿐인데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주위 사람들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총총히 더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먼저 떠나버렸다. 무심한 친구같으니라고
아침 이슬과 같이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라고는 하지만 가깝게 알던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성경 말씀을 실감케 한다.

아서 밀러의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은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고있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그린 비극이다. 월리 로먼은 30년이상 세일즈맨으로 살아오면서 이제는 나이가 어느덧 60대에 들어선 평범한 회사원으로 모아논 재산도 없고, 명성이나 지위도 없는 그저 그렇게 시끈둥한 삶을 살고 있는 보통 사람일 뿐이다. 한동안 두 아들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들을 통해 이루고 싶은 강렬한 소원이 있었지만 그런 기대도 아들들이 오히려 삐딱한 인생을 살면서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월리는 36년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세일즈 실적미달로 해고를 당하고 큰 아들은 도박에 빠져서 그나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탕진해 버린다. 가장으로 가족들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책임을 통렬하게 느끼는 월리는 최후의 수단으로 생명 보험금이라도 가족들에게 남겨줘서 가족들이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는 허망한 생각을 하게되고 결국 얼마후 자동차를 폭주해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다

산업화된 현대사회는 맹수들이 들끓는 아프리카 정글보다 때로는 더욱 위험하고 비정하며 매말라있다. 소수의 성공한 계층과 기득권을 잡고 있는 일부 행운아들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인간 소외현상과 그에 따른 아픔과 상처들을 부둥켜않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목마름가운데 신음을 하고 있다. 주인공 월리가 죽은 후 장례식에서 부인 린다가 하는 독백은 아메리칸 드림을 쫒아 살다 삶을 마감한 세일즈맨의 허무한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보, 오늘로서 드디어 집 페이먼트 다 마쳤어요마침내 우리 집이 생겼는데 이제는 그 집에서 함께 살 사람이 하나도 없네요…”   

인생은 허무하다. 특별히 죽음을 염두에 두고 인생을 바라보면 초라한 본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부귀영화를 다 누렸던 솔로몬도 인생을 돌아보면서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혜의 사람이었던 솔로몬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고 이렇게 살 때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다고 후대 사람들에게 조언했다.   
우리는 오늘 밤이라도 세상을 떠날 수있는 사람들이다. 그날이 예고 없고 찾아오기 전에 지금 이 순간들을 어떻게 보내기 원하는가? 사소한 일에 분노하고 용납하지 못하며 좀 더 소유하기 위해 발보둥치거나, 남의 눈치보면서 짝퉁처럼 살아가는 그런 인생은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먼저 세상을 뜬 친구를 추모하며, 그 때문에라도 숨쉬고 있는 동안 허무함을 극복하고 더욱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75 조지 오웰 "1984"


유토피아(Utopia)가 천국이라면 디스토피아(Dystopia)는 지옥이다. 인간이 꿈꾸는 가상의 세계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로 나눠진다. 16세기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모어가 상상한 유토피아 세상은 1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가상의 섬으로 그곳에서는 돈도 필요없고, 범죄도 없으며 무엇보다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해 전쟁이 없는 이상향이다. 이에 반해 디스토피아는 인간의 사악함으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전체주의적 통제와 힘의 균형에 의한 질서에만 의지하는 암울하고 불행한 인류의 미래사회를 말한다.   

조지 오웰의 ‘1984’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자마틴의 우리들과 함께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힌다. 오웰은 1948년도에 36년뒤 다가올 전체주의적인 세상을 당시로서는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당시 소련 스탈린의 공산독재체제와 유사한 암울한 인류의 미래를 예고했다
1948년 당시 오웰이 소설에서 그린 36년뒤 세계는 크게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로 나뉜다. 이 세 국가는 철저한 전체주의 독재국가로서 그 존재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빅브라더를 정점으로 절대권력을 가진 내부 (party)이 지배하는 나라들이다. 나라 곳곳에는 빅 브라더가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있다는 포스터가 붙어있고 당의 핵심 슬로건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다. 거리 곳곳과 집안에는 델레스크린(Telescreen)이라는 대형 화면이 설치되어 24시간 감시하고 있다. 오늘날에야 CCTV라는 기술이 발전돼 이런 모습을 쉽게 그려볼 수 있지만 TV자체가 발명된지 얼마되지 않았던 당시에 이런 미디아 기술을 상상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 정부의 진리부(Ministry of Truth) 외부당원으로 과거의 역사를 조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진리부의 슬로건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로서 과거의 모든 저작물, 특별히 역사서들을 현재 시점에 맞게 완벽하게 조작하고 재생산한다. 개인적인 감정표현이 금지돼있는 사회에서 윈스턴은 줄리아라는 미모의 당원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남녀간의 사랑이 발각되면 심각한 처형을 면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서 이들 둘은 열정적인 사랑을 키워나간다. 결국 텔레스크린의 통제에 걸려 체포된 윈스턴과 줄리아는 애정부 (Ministry of Love)라는 곳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오직 빅 브라더만을 사랑하는 인간으로 거듭나고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은 모두 지워지고 만다.

십대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소설 헝거 게임”(Hunger Game) “다이버전트”(Divergent)와 같은 작품들도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오웰이 그렸던 전체주의 통제사회의 모습을 틴에이저들의 입맛에 맡게 재구성한 디스토피아 아류 작품들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조지 오웰은 인류가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유토피아를 이 땅위에 건설할 수 없다고 믿었고, 그런 생각가운데 동물이 인간을 몰아내고 낙원을 건설하자고 부추기는 우화 풍자소설 동물농장을 완성하기도 했다

74 리차드 바크 <갈매기의 꿈>


기존질서는 필요하다. 하지만 기존질서는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기존질서가 기득권으로 연결될 때 조직은 더 이상 진보적인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20세기 중반이후 전후 세대는 기존질서가 가파르게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 세대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은 인류가 노력하면 파라다이스를 지구상에 건설할 수도 있을 거라는 낙관론을 산산히 부서뜨렸고 그 틈새를 비집고 나온 대표적인 사상이 부조리를 강조한 실존주의 철학이였다
카뮈의 이방인속 주인공 뫼르소와 같이 현실의 모든 상황을 부조리한 것으로 인식하던 젊은이들은 외부로 부터의 속박을 거부했고 전통의 옷도 과감하게 벗어던졌다. 록 음악과 청바지, 덥수록하게 기른 머리를 한 히피족들은 그렇게 나름대로의 자유를 갈망했던 것이다.

이 무럽 발표된 소설이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었다. 이 책은 출판과 동시에 미국내에서만 7백만권이 팔렸고, 갈매기 2만마리를 동원해서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팝 싱어 닐 다이어몬드에 의해 “Be”라는 곡으로 만들어졌다. 리차드 바크는 갈매기의 날갯짓에 얽힌 우화 소설을 통해 인간은 누구나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진정한 자유와 존재의 의미를 찾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나는 것을 사랑했다. 갈매기가 먹이이외의 것에 대해서 관심을 두는 일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그는 다른 갈매기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단순한 비상(飛翔) 이상의 것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해변을 떠나 먹이를 비축하고 되돌아오는 것 이상의 기술은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모든 갈매기들에게 당면 문제는 나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구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조나단은 그렇지 않았다. 먹이보다 나는 걸 훨씬 중요하게 생각해 부모마저 걱정할 지경이었다. 아버지는 조나단에게 “활공(滑空)으로 먹고 살 수는 없다”고 충고했다.

날개가 찢어지는 듯한 노력 끝에 조나단은 어떤 갈매기도 이루지 못한 수직 급강하와 초고속 비상에 성공한다. 문제는 남이 하지못한 일을 시작한 파이오니어는 언제나 그 사회의 이단자로 찍히게 된다는 것이다. 갈매기 사회는 조나단의 갈매기답지 않은 비행’을 추궁하는 청문회를 열어 무책임하고 무분별하게 갈매기족의 존엄과 전통, 기존질서를 거역한 죄를 물어 추방을 명령한다. 고독과 슬픔을 삭이며 갈매기 조나단은 더욱 깊은 비행의 경지에 오른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말과 함께 그는 자유란 원하는 대로 빨리 나는 것, 그곳이 어디던지 날아갈 수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 후 조나단은 생각하는 대로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영적 능력까지 갖추게 되면서 천국까지 비행을 하고자 했을 때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존재에 관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틀에 박은 것처럼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가운데는 무리에 속하기 원하고, 다수를 쫒아 안정성을 추구하려는 대중심리가 다분히 자리잡고 있지만 보다 의미있는 삶을 살기 원하면 남들과 좀 다르게 살고 생각하는 껍질 깨기의 노력이 있어야한다. 갈매기 조나단은 남들이 먹이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 비행에 모든 것을 걸었지만 결코 먹이가 없어서 굶어 죽지 않았다.

73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오늘날 세상 곳곳에는 분노의 포도가 주렁주렁 열리고 있다. 모술, 카로코시, 주마르, 신자르이름도 생소한 이라크의 도시에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개종을 거부하는 신자들의 목을 자르는 과격 회도교들의 광분하는 모습을 보며 극심한 무기력을 느낀다. 마라나타

또한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도 한치의 양보 없이 양쪽 모두 분노의 열매만 양산하고 있다. 분노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정서 상태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무언가 강요당하거나 불의한 방법으로 자신의 권익이 침해당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생존권이 힘에 의해 억압받을 때 사람들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분노는 곧바로 파멸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분노의 포도라는 소설 제목은 줄리아 워드하우의 시 가운데사람들의 영혼속에 분노의 포도가 넘쳐흐르고 송이송이 열매를 맺는다는 구절에서 따온 것. 존 스타인벡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이 작품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과 인간 중심적인 휴머니즘의 결합이다. 작가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 분노에 가득찬 삶을 사실적으로 고발함으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경향을 뚜렷이 보이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휴머니즘적 요소를 소설 곳곳에서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1930년대 미국은 대공황과 자연재해로 인해 경제구조의 근간이 무너지면서 수십만명의 가난한 농부들은 땅을 지주에게 빼앗기고 타향살이를 떠나야만했다. 66번국도를 따라서 캘리포니아를 향해 정처없이 이동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실 것이 없어서 실제로 길에서 굶어 죽었다. 천신만고끝에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이주민들이 그 땅에서 직면하게된 현실은 또다른 노동착취와 학대 그리고 질병과 굶주림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조드 일가는 가난과 분노가운데 하루 하루를 보낸다. 실업자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 가운데 굶주림에 거의 죽게된 중년의 남자를 살리기 위해 젊은 여자가 자신의 젖을 물리는 장면은 오래토록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그 소년의 아버지는 죽음에 임박해 보였다. 소년은 절박하게 울부짖으며 도움을 청했다. 그때 조드 가족의 큰 딸 로자사안은 자신의 모유를 소년의 아버지에게 먹이기로 한다. 사람들을 나가게 하고 유방을 꺼내 중년 남자에게 젖을 짜서 먹이는 장면은 묘한 감동을 연출한다. 작가는 이런 상황 설정을 통해 인간들이 절망과 분노 가운데서도 따뜻한 인간애는 살아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자 했다.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일들을 보면서 분노와 회한을 금할 길이 없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나?”라는 질문은 이런 상황 가운데 흔히 던지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차라리 인간들이 이렇게 악한대도 어떻게 세상이 아직 멸망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으로 대체되야한다. 하나님의 속성을 이해할 수 록 하나님은 참 사랑이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다. 타락한 인간들이 오늘 이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서 분노의 포도를 주렁주렁 맻으며 파괴와 살인을 일삼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선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오늘도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사실에 감사를 드리게 된다.   

72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한국전쟁이 한 참 중이었던 1952년 발표된 헤밍웨이의 중편소설 노인과 바다는 그 줄거리가 너무 단순하고 얼핏보면 아무런 극적인 재미도 없어 어찌 이런 작품이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게 되었을까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가치와 의미는 상징성에서 찾아야한다. 인생에 대한 헤밍웨이의 실존주의적 관점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노인은 쿠바의 도시 하바나에서 고기를 낚아 근근히 살아가는 가난한 어부이다. 이제는 노쇠하지만 이웃 소년 마놀린과 함께 배를 타며 어부로서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84일 동안 계속해서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소년을 다른 배의 조수로 보낸다. 산티아고 노인은 혼자 먼바다까지 나가고, 그의 낚시에 거대한 돛새치 한 마리가 걸린다. 사흘 간의 사투 끝에 노인은 대어를 죽여 배 뒤에 매달고 귀로에 오른다. 그러나 돛새치가 흘린 피 냄새를 맡고 상어떼가 따라오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 노인은 다시 한 번 목숨을 건 싸움을 한다. 노인이 가까스로 항구에 닿았을 때는 이미 그가 잡은 고기는 상어 떼에 물어 뜯겨 앙상하게 뼈만 남은 후다. 노인은 지친 몸을 이끌고 가까스로 언덕 위에 있는 오두막으로 가서 정신 없이 잠든다.

산티아고 노인은 상어로 상징되는 현실의 고통과 싸우다가 결국 현실적으로는 패배한다. 그러나 희망을 끝내 버리지 않고 돌아와서 사자를 쫓는 꿈을 꾼다. 헤밍웨이는 노인을 통해 어떠한 일에도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고난과 맞서 싸우는데서 인간의 존엄성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다.
인간은 죽을 수는 있지만 희망을 잃지않는 한 결코 패배하지는 않는다

헤밍웨이의 이런한 철학은 오늘날 서구인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를 잘 이해하게 해준다. 이 소설에서 바다는 운명을 상징하는 동시에 인간의 삶의 터전을 뜻한다. 노인은 이러한 바다에서 굽힐 줄 모르는 인간의 의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배위에서 수 없이 혼자말로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며, 상어와 끝까지 싸우는 것은 현실의 고난에 맞서 싸우는 저항의 한 표현이다. 상어에게 고기를 빼앗기고 극도로 피곤한 가운데 돌아와 사자 꿈을 꾸는 노인의 모습은 절망과 허무를 뛰어넘은 인간 정신을 보여준다

헤밍웨이는 1차 세계대전이후 기존의 모든 이상과 가치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빠져서 주로 국외에 거주하며 집핍활동을 벌였다. 그는 전쟁으로 인한 신념의 상실과 절망속에서 생활의 방향을 잃은 수 많은 전후 세대들의 심리 상태와 현실을 소설가운데 묘사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좋은 울리나그리고 잃어버린 세대’’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킬리만자로의 눈등의 작품들은 20세기 미국문학사에 가장 대표적인 작품들로 꼽힌다.개인적인 삶에서는 4번의 결혼과 항공기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라다 집필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아이다호에서 엽총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71 펄 벅 <대지>


펄벅 여사는 한국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이였다. 중국 선교사의 딸로 1892년 태어난 펄 여사는 중국에서 성장하며 동양문화권을 누구 보다 잘 이해했다. 18세가 되면서 대학교육을 받기 위해 버지니아주의 랜돌프메이컨 여자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그것은 마치 미국으로 유학을 온 것같은 느낌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다시 선교사가 되어 중국으로 돌아갔다.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을 한 던 중 작가로 데뷰했고, 1931년 출간된 대지는 출판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켜 플리처상과 미국문예아카데미 상을 받았고, 1938년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펄 여사는 한국전쟁이후인 1953년부터는 한국을 자주 방문하기 시작했고,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한 펄벅재단을 설립해 수 많은 전쟁고아들에게 소망을 주었다. 펄 여사는 이후 한국을 동양의 보석과 같은 나라라고 소개하며 한국을 위해 많은 일들을 했고 후에 박진주(Pearl)라는 한국이름을 갖고 사역지를 중국에서 한국으로 완전히 이전해 여러가지 선교사역의 열매를 맺었다.

대지는 시대적으로 혼란스러웠던 193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집안 3대에 걸친 인생 드라마를 그린 대하소설이다. 안후이성의 가난한 농민 왕릉이 아내를 얻는 날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며 아내는 큰 부잣집인 황가의 하녀였다. 말이 없고 건강한 그녀는 왕릉의 자식을 잇달아 낳는다. 부부는 아침부터 밤까지 밭에서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가뭄으로 인해 농사를 망치게 되자 왕릉은 장쑤성의 도시로 나가 인력거꾼으로 일을 하던 중 폭동의 와중에 큰 돈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윽고 몰락한 귀족 황가의 땅과 저택을 손에 넣어 대지주로 변신한다. 벽락부자에 신분상승까지 이룬 왕릉은 찻집 여자 렌화에게 반해 그녀를 첩으로 들인 뒤 환락에 빠진 생활을 한다. 그러나 토지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강하고 돈을 불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세 아들들은 각각 교육을 받아 큰 아들은 귀족 취미를 즐기고, 둘째 아들은 축재에 능하며, 셋째 아들은 집을 뛰쳐나가 군벌의 우두머리가 된다. 왕릉의 손자 위안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는 중국에서 미국 유학을 통해 얻은 지식을 기반으로 농업개혁등을 시도한다. 그러나 신세대와 구세대의 복잡한 모순에 부닥치고, 국민당 정권에 실망해 공산당 지구로 떠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갈등한다.

격동하는 중국의 역사가운데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역사의 변천에 흔들리지 않고 중국의 광대한 국토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살다가 죽는 강인한 잡초와 같은 중국 농민들의 모습이었다. 토지에 대한 농민의 집착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작가는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작품속에서 작가는 토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려는 중국 농민과 기계에 기대어 살아가려는 미국 국민의 차이점을 여러가지 측면에서 부각하려고 했다. 그녀는 기계는 절대로 인간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또한 오랜 중국 생활을 통해 농민들이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기본적으로 그 밑바탕은 선량하다는 사실을 믿고  그런 중국인의 모습을 소설속에서 그려나갔다.

70 프랜시스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1차대전 직후인 192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황폐한 현대 물질 문명속에서 아메리칸 드림이 어떻게 성취되고 무너져가는지를 묘사하고 있는 소설이다. 그 당시 미국내 유산계급에 관한 퇴폐상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20세기 미국 문학의 대표적인 소설이다. 또한 최근에 다시 한번 영화로 리바이벌 되면서 원작 소설에 대한 관심, 그리고 재 번역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프랜시스 피츠제럴드는 1896년 미네소타주에서 귀족적이던 아버지와 시골 출신 어머니 사이에 외아들로 태어났다. 프린스턴대학에서 문학가로 꿈을 키워갔으며 1차대전이 발발하자 지원병으로 입대해 전쟁의 파괴성과 부조리를 체험하고 돌아온다. 이후 새로운 세대의 선언이라고도 할 만한 최초의 자전적인 장편소설 낙원이 이쪽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게되었다. 그는 화려운 삶을 좋아해 매일 밤 파티를 열었고 그 비용때문에 청탁이 들어오는대로 작품들을 썼다고 한다. 그중 최고의 작품이 바로 1925년 발표한 위대한 개츠비로 순수한 사랑과 돈의 힘을 얻었다가 몰락한 남자의 꿈과 좌절을 통해 그가 살았던 시대의 풍속과 정신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그렇게 파티로 일관된 향락된 삶을 살다가 그는 1940 44살의 나이로 일찍 사망했다.

기회와 자본의 나라 미국에서 입신출세를 꿈꾸한 순박한 야심가 개츠비는 1백년전 미국은 물론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아메리칸 드림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다. 호화로운 저택에서 밤마다 큰 파티가 계속되는데 개츠비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예전의 가난한 시절에 사랑했던 데이지의 관심을 다시 찾기 위함이었다. 데이지는 그가 1차대전때 유럽전쟁터로 나가있던 사이에 톰이라는 부자와 결혼해 그를 떠났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자신을 떠난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모든 수단을 써서 부자가 되었고 일부러 데이지의 저택과 가까운 곳에 큰 집을 샀던 것이다. 데이지의 친적인 옆집사람 닉의 주선으로 개츠비는 드디어 데이지와 재회를 했다. 단순한 개츠비는 데이지와의 재회를 통해 그녀의 사랑을 되찾았다고 믿어버린다. 그러나 어느 무더운 여름날 데이지가 운전하던 개츠비의 차가 톰의 정부를 치어죽이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톰은 개츠비가 그렇게 한 것이라고 오해하고 개츠비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제이 개츠비는 어찌보면 가장 미국인다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했지만 열심히 일해서 아메리칸 드림의 기회를 놓치지않고 큰 부자가 되었다. 현실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생각가운데 예전에 애인이었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이유를 다만 그녀가 돈에 눈이 어두워져서라고  순진하게 믿고 돈으로 잃어버렸던 사랑을 되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영화로 더 유명하다. 이제까지 헐리웃에서는 4번이나 이 작품을 영화화 했는데 70년대에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 페로우가 주연한 영화가 참으로 신선하고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가장 최근에는 레오나르도 드 카프리오, 캐리 멀리건을 주인공으로 세워 다시 한번 훙행에 성공한 작품이 되었다.    

69 유진 오닐 <느릅나무 밑의 욕망>


1850년대 뉴잉글랜드의 농장을 배경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인간의 무한한 소유욕을 극화하고 있는 미국 자연주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리스 극의 골격을 채용하고 있으며 당시 미국인들의 개척정신과 모성 콤플렉스가 소설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음모와 꿈틀거리는 욕망의 춤은 농부 에프라임 캐벗의 집에 젊은 계모가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전처들이 낳은 2명의 아들들은 캐벗이 세번째 젊은 아내 아비를 데리고 오자 농장상속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서부 금광으로 떠난다. 그러나 에벤은 자기에서 상속권이 있다고 믿으며 농장에 남기로 작정하는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젊은 계모 아비에게 마음이 끌리게 된다.

느릅나무가 상징적으로 작품 전체를 뒤덮고 있는 이 미국 최초의 본격적인 비극에서는 물욕과 정욕이 뒤엉키는 것에서 부터 모든 갈등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욕망때문에 깊이 고민하는 사람이 바로 에벤이다. 모성애를 풍기는 아비의 유혹에 현혹된 뒤에 그것이 후계자인 아이를 만들기 위한 책략이었다고 오해한 에벤의 말이 아비로 하여금 이 아이만 없어지면…”하는 생각을 갖게한다. 애로부터 많은 소설 작품들이 묘사하고 있는 것 처럼 이 비극의 경우도 그 밑바닥에는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어쩔 수 없는 업()이 숨어있는 것이다.

극작가 유진 오닐은 1888년 뉴욕에서 인기 배우였던 아버지 제임스와 상당히 부유한 집안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결혼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오닐이 죽은 뒤에 발표된 밤으로의 긴 여로는 자신의 지옥같았던 자전적 요소를 보편적인 문제로 깊이 탐구한 걸작으로 꼽힌다. 1920년에 지평선 너머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했고 그로부터 현대 미국 연극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한 본격적인 연극작품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그 후 4번에 걸쳐 퓰리처상을 수상하는등 상복은 많았지만 가정에 있어서는 이혼, 사별, 자녀들의 자살등 불행으로 점철된 어려운 삶을 살았다.  

오닐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불가해한 세력을 밝혀내려는”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신에 대한 신앙과 전통적 가치 체계에 대한 신념이 붕괴된 사회에서 무엇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것을 희극보다는 비극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인생 자체가 비극이다”라고 말하며 비극이 외면적으로는 패배를 가져다줄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비극적 투쟁이 정신적인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느릅나무 밑의 욕망은 두 대립되는 힘 사이의 갈등으로 인생을 바라본 오닐의 비극관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 중 하나다. 느릅나무는 전제적이고 탐욕적인 캐벗의 위력에 맞서는 힘이 된다. 캐벗이 대표하는 뉴잉글랜드의 엄격한 청교도주의, 탐욕, 계율, 억압에 대비되는 느릅나무는 감성, 사랑, 열정, 욕망, 생에 대한 환희를 상징하는데 이 두 세력 간의 대결 구도로 시종 소설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68 마가렛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바람과 같이 사라진다. 바람은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잡을 수도 없지만 바람이 지나간 곳은 남은 흔적을 보고 알 수 있다. 인생도 그렇다. 결국 남은 것은 추억과 묘비명에 새겨질 이름밖에는 없다. 성경에서는 성령이 하는 일이 바람과 같다고 말한다.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성령의 터치가 있었던 곳에서는 변화가 있고, 성령의 바람이 불면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는 회심(回心)이라는 흔적이 남는다.

마가렛 미첼의 장편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목은 19세기 낭만파 영국 시인 어니스트 다우슨의 키나라라는 시에서 인용해 온 것이다. 이 작품은 1860년도 남북전쟁과 전후의 사회를 배경으로 미국 남부 귀족의 몰락 그리고 그 내부의 사랑과 미움, 그리고 부유와 가난등 그 모든 것이 바람과 같이 사라지는 인생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은 아니지만 청년들이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히면 그런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의 주인공 스칼렛은 조지아 주의 애틀랜타에 있는 타라라고 불리는 큰 농장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는 아일랜드인이고 ,어머니는 프랑스계 귀족출신이었다. 스칼렛은 애슐리를 사랑해 그가 청혼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애슐리는 그녀의 사촌인 멜라니를 결혼상대로 택한다. 화가 난 스칼렛은 멜라니의 오빠 찰스와 결혼하지만 얼마뒤 전쟁에서 전사하고 스켈렛은 아들을 낳는다. 엇갈린 사랑으로 억센 삶을 스스로 선택한 거센 의지의 여인 스칼렛은 이후 돈을 위해 목재상과 재혼을 했는데 그도 얼마후 죽고, 레트 버틀러와 세번째 결혼을 한다. 레트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지만 항상 그녀를 대할 때마다 자신은 애슐리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언젠가는 그녀를 떠날 생각을 하고있다

1천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이 소설은 결혼을 3번 거듭하며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남북전쟁 전후 시대를 살아간 스칼렛 오하라라는 여인의 파란만장한 사랑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있다. 미국이 대공항기를 건너가고 있던 1936년에 발표돼 당시 경제적으로 우울했던 미국 사회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졸지에 1백만부 이상의 책이 팔려나갔고, 30여개국에서 번역출간 되었다. 또한 1939년도에는 비비언 리와 클라크 케이블이 주연한 영화로 각색되었다. 사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소설보다는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작품이다. 당시 허리 사이즈가 18인치밖에 안되는 파란 눈의 비비안 리가 콧수염을 멋있게 한 클락크 캐이블의 팔에 안겨 끝없이 펼쳐저 있는 목화밭을 배경으로 농장, 그리고 북부군에 공격으로 모든 것이 불에 타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현장을 뒤돌아보는 그 장면은 마치 한장의 그림처럼 오랫동안 기억속에 세겨져 있다.

마가렛 미첼은 이 소설로 1937년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백인들 사이에서는 이 소설이 출판과 동시에 공전의 히트를 쳤지만 흑인들은 이 소설가운데 묘사되고있는 인종문제와 노예제도에 대한 묘사, 그리고 남북전쟁에 대한 작가의 견해 때문에 그렇게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이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설은 그냥 소설로 읽으면 되는데도 말이다.

67 오 헨리 <마지막 잎새>



미국의 단편소설 작가 오 헨리는 1862년 노스 캐롤라이나 애쉬빌에서 태어나 그곳에 묻혔다. 47세의 나이로 단명한 그는 미국의 모파상이라 불리며 짧은 창작 기간동안 잘 알려진 단편 마지막 잎새를 위시해서 경찰관과 찬송가”, “현자의 선물등 약300여편의 주옥같은 단편소설을 남겼다. 수 년전 노스 캐롤라이나 애쉬빌을 운전하고 지나갈 기회가 있었는데, 이 작은 전원도시 애쉬빌은 온통 오 헨리 추억으로 덮혀 있었다. 오 헨리(그의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가 태어난 작은 집은 박물관으로 잘 보전돼있었고, 그가 묻혀있는 교회 공원묘지에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후 1백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생화를 무덤위에 남겨 놓고 있었다. 작가는 사라졌어도 작품은 영원히 남아 후대 사람들의 마음속에 길고 긴 감동을 던져주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나는 그것이 고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잎새는 희망을 노래한 단편소설이다. 오 헨리는 이 작품을 통해 인생에 있어서 희망의 소중함,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희생의 아름다움을 극적인 스토리의 반전, 그리고 간결한 필체로 그려냈다.

등장인물은 페렴에 걸려 누워있는 존시, 그리고 친구 수, 작은 도깨비 같은 몸에 곱슬거리는 수염을 늘어뜨린 괘상한 화가 노인으로 묘사된 베어먼 할아버지등 단 3명이다.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는 무명화가들이 모여들어 예술가촌이 형성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수와 존시는 3층짜리 건물 꼭대기층에 공동화실을 가지고 있었다. 페렴으로 살아갈 기력을 잃은 체 투병하고 있던 존시는 창문밖 담쟁이 덩굴의 잎이 다 떨어질 때 자기의 생명도 끝난다는 허망한 상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저 잎말야저 담쟁이 덩굴에 붙은 잎새그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드디어 나도 가는거야삼일전 부터 난 쭉 알고 있었어, 그리고 의사 선생님도 내게 희망이 없는 것을 알고 있는것 같아...” 친구 수는 그런 바보같은 소리는 하지말라며 소리를 버럭질렸지만 영 마음이 편치않았다. 수는 아래층에 살고 있던 베어먼 노인에게 존시의 망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인은 동정을 보이면서도 존시의 망상에 경멸과 조소를 퍼붓는다. 그날밤 유난히 춥고 눈,비가 섞여내리던 밤, 베어먼 노인은 존시에게 희망을 주기위해 담쟁이 덩굴이 있는 벽에 실물과 꼭같은 잎새를 감쪽같이 그려놓는다. 다음날 존시는 잎새가 분명히 다 떨어졌을 줄 알았는데 그 후에도 계속 끈질기게 붙어있는 잎새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며 새로운 희망을 찾게된다. 하지만 비바람을 맞으며 잎새를 그렸던 베어먼 노인은 급성 페렴에 걸려 이틀뒤에 죽는다. 존시의 목숨 대신…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세상에는 질병과 고통과 전쟁, 미움과 질투가 넘치게 되었지만 어떠한 절망가운데서도 상자속에 아직 갇혀있는 희망을 찾게되는 순간 인간은 절망을 극복할 수 있게된다. 희망만이 온전한 삶의 원동력이며,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빼았겨도 희망을 잃지 않으면 반드시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희망은 결국 생명 그 자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