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죽음을 당돌하게 선언한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은 고뇌와
좌절뿐이다.
니체의 사신(死神)철학을 기반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한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은 1,2차 세계대전의 암울한 분위기와
맞물려 극도의 니힐리즘속을 빠져들어간다. 문학에 있어 실존주의란 곧 고아같은 삶을 예정하며 삶의 고독과 분열을
의미한다. 실존주의의 대가 쟝 폴 사르트르나 알베르트 카뮈가 작품가운데 그려낸 ‘부조리’사상들도 결국은 이성적으로 깨달을수 없는 인생의 의미를 불합리와 부조리라는 개념속에
맟춰 보려는 힘겨운 몸짖이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이미 목적과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실존주의의 또 다른 대표적인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1세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암울한 서구사회를 배경으로 인간 존재의 자기상실을 깊이 있게 탐구하면서 중편소설 ‘변신’을 완성했다. 이 시기는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
과학 문명이 발달되면서 인간의 존엄성은 무시되고 물질적인 만족만을 추구하는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하였고 이에 부합해 합리적인 인간 이성을 강조하며,
국가간에는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세계대전을 향해 치닫고 있던 불안한 때었다.
어느날 아침 그레고르는 뒤숭숭한 꿈자리에서 깨어나보니 자신이
침대속에 한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신해 있는 것을 발견하게된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어떻게 그리고 왜 벌레로
변신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린 황당한 설정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벌레는 비록 몸은 변신했지만 과거의 모든 의식과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자기 내면성찰과 가족들의 반응 그리고 사회의 불합리함을
일인칭 관점에서 기술해 나간다.
세일즈 맨 그레고르는 열심히 일을 하여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헌신적인 청년이었다. 그는 자신의 그런 희생이 가족들에게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왜냐하면 가족들은 그가 어처구니없이 벌레로 변했을 때 그를 냉대하고 죽어버렸으면하고
바라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을 때 오히려 공원으로 피크닉을
나가며 활기찬 모습을 보이기까지한다. 말도 않되는 상황이 현실로 나타난다. 죽음에 대한 그레고르의 동의는 세계에 대한 불안으로 야기된 자신의 고립 의지와 저항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 것이다. 이것을 카프카의 자아분열이라는 공식에 대입해 보면 외부사회에서 지치고 소외된 일상적 삶을 도피하는 방법으로서의 변신은 결국 실패한
것이고 죽음과 타협함으로 순수영역으로 복귀하고 싶다는 타나토스적 욕망이 발동된 것이다.
소망과 목적이 없는 삶은 구태어 변신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어짜피 벌레와 같은 삶이다. 인본주의적 실존주의 입장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외쳐볼 때 남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니체가 주장한 사신철학, 초인사상은 무신론의 극치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또한 인생의
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들은 그렇게 무신론적 인본주의 사상을
탐닉하고 있는것일까? 정말 신은 죽었고 인간도 신처럼 될 수 있다는 창세전부터의 그 거짓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실존주의 문학을 접할 때마다 가슴에 와닫는 본질적인 질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