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6일 일요일

59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얼 그레이(Earl Grey) 차의 진한 향기를 맡으면 항상 눈 덮힌 모스크바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오른다. 모스크바에서 추운 겨울을 지내던 시절, 지하철역에서 아파트까지 꽁꽁 얼은 발을 동동구르며 뛰어 들어와 얼른 물을 데워 얼 그레이 차를 한잔 마실 때 심신이 한꺼번에 녹아들었던 그 따듯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맛이나 향기를 통해 잠재되있는 의식, 기억이 떠오르는 현상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심리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자신의 기억과 회상을 추적하며 전7권 약4천여 패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성했다.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잃어버린 기억과 회상을 찾아서 나선 작가의 마음 여행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프루스트는 이 소설을 통해서 20세기 현대문학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파이오니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루스트 이전의 소설들은 사건과 사고 그리고 외적으로 진행되는 일들에 촛점을 맟춰 스토리를 진행시켜왔지만 프루스트는 시간에 풍화되어 버린 인생을 관조적으로 그리다 보니 철저하게 내적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바로 이 점이 프루스트 소설의 매력이지만 처음 대하는 사람으로서는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프루스트의 소설은 전형적인 프랑스풍의 영화, 한 폭의 아름다운 수체화를 보는 듯 한 느낌이다.

오래 전부터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왔다라고 시작하는 제1권의 글은 잠시  후 잠에서 깨어나 때로는 순간 몽롱한 상태로 추억의 영상이 또렷하게 그려지지 않는 상태, 즉 기억에 흔들림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고백하며 주인공 의 소년시절을 환기시킨다. 소년이 매년 휴가를 보내러 간 시골 마을 콩브레에는 2개의 산책길이 있다. 하나는 파리의 부르주아인 스왕가의 별장으로 향하는 길로 그곳에는 스왕 집안의 딸 질베르트가 살고있다. 또 하나의 길은 중세 때 부터 내려온 명문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저택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 두 갈래 길은 소년인 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두개의 세계가 19세기말에서 1차 세계대전 직후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서로 교차하며 융합해 가는 형태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질베르트와의 아련한 첫사랑이 깨진 뒤 할머니와 노르망디 해변의 발베크로 가고, 그 곳 해변에서 알게된 다른 소녀 알베르틴에게 끌리는 소년의 마음

프루스트 현상과 유사한 의미의데자뷰란 단어는 과거에 어디선가 이미 봤던 것 같은 인상의 장소, 분위기를 다시 가보는 것을 의미한다. 세월호의 엄청난 비극을 보면서 데자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니 어쩌면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보면서 떠오른 개인적인 프루스트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대학가에 데모가 연일 계속되는 아수라장속의 한국을 떠난지 어느덧 30년이 지났건만 이번 사고를 통해 다시 만난 한국은 내가 떠나올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살궁리에 바쁘고, 사고원인에 대해서는 쉬쉬하며 발빰만하고 감정만을 자극하는 삼류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허무한 데자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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