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벅 여사는 한국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이였다. 중국 선교사의 딸로 1892년 태어난 펄 여사는 중국에서 성장하며 동양문화권을 누구 보다 잘
이해했다. 18세가 되면서 대학교육을 받기 위해 버지니아주의 랜돌프메이컨 여자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그것은 마치 미국으로 유학을 온 것같은 느낌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다시 선교사가 되어 중국으로 돌아갔다.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을 한 던 중 작가로 데뷰했고,
1931년 출간된 “대지”는 출판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켜 플리처상과 미국문예아카데미 상을 받았고, 1938년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펄 여사는 한국전쟁이후인 1953년부터는 한국을 자주 방문하기 시작했고,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한 펄벅재단을 설립해 수 많은 전쟁고아들에게 소망을 주었다. 펄 여사는 이후 한국을 동양의 “보석과 같은 나라”라고
소개하며 한국을 위해 많은 일들을 했고 후에 박진주(Pearl)라는 한국이름을 갖고 사역지를 중국에서 한국으로
완전히 이전해 여러가지 선교사역의 열매를 맺었다.
대지는 시대적으로 혼란스러웠던 193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집안 3대에 걸친 인생 드라마를 그린 대하소설이다. 안후이성의 가난한 농민 왕릉이 아내를 얻는 날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며 아내는 큰 부잣집인 황가의 하녀였다. 말이 없고 건강한 그녀는 왕릉의 자식을 잇달아 낳는다. 부부는 아침부터 밤까지 밭에서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가뭄으로 인해 농사를 망치게 되자 왕릉은 장쑤성의 도시로 나가 인력거꾼으로 일을 하던 중
폭동의 와중에 큰 돈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윽고 몰락한 귀족 황가의 땅과 저택을 손에 넣어 대지주로
변신한다. 벽락부자에 신분상승까지 이룬 왕릉은 찻집 여자 렌화에게 반해 그녀를 첩으로 들인 뒤 환락에 빠진
생활을 한다. 그러나 토지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강하고 돈을 불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세 아들들은 각각 교육을 받아 큰 아들은 귀족 취미를 즐기고, 둘째 아들은 축재에 능하며,
셋째 아들은 집을 뛰쳐나가 군벌의 우두머리가 된다. 왕릉의 손자 위안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는 중국에서 미국 유학을 통해 얻은 지식을 기반으로 농업개혁등을 시도한다. 그러나 신세대와 구세대의
복잡한 모순에 부닥치고, 국민당 정권에 실망해 공산당 지구로 떠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갈등한다.
격동하는 중국의 역사가운데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역사의
변천에 흔들리지 않고 중국의 광대한 국토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살다가 죽는 강인한 잡초와 같은 중국 농민들의 모습이었다. 토지에 대한 농민의 집착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작가는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작품속에서 작가는
토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려는 중국 농민과 기계에 기대어 살아가려는 미국 국민의 차이점을 여러가지 측면에서 부각하려고 했다. 그녀는 기계는 절대로 인간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또한 오랜 중국 생활을
통해 농민들이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기본적으로 그 밑바탕은 선량하다는 사실을 믿고 그런 중국인의 모습을 소설속에서 그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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