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방문할 때의 경험이다. 고도 3만피트 상공에서 새벽 여명이 밝아오는 광경을 바라보는 것은 경이한 일이다.
구천 하늘에 가까워져있어 그런가 평소에는 머리위로 올려 보기만 했던 눈에 익은 별자리들이 어느 순간엔가 수평 눈높이에
자리잡고 있다. 비너스, 스카이파, 시리우스등 그날 밤 가장 밣게 빛나는 별들을 찾아보며 창 밖의 신비한 모습에 이미 넋을 잃고 있는데 까마득한 지평선 너머로 어느
사이엔가 동녁이 환하게 터오기 시작한다. 오 마이 갇! 야간비행을 통해
창조자의 손길과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을 목격하는 예견치 못한 감동의 순간… 그리고 이런 곳에는 더 이상 무신론자가 서있을 공간이 없다.
하늘과 별과 온 우주를 기억하는 일,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실존은 처절하게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오직 영혼만이 가치있는 것이다. 그래서 야간비행은
어쩌면 깨달음의 신비한 나라로 들어가는 또다른 통로인지도 모른다.
생텍쥐베리에게 있어 비행기는 교통수단이 아니라 깨달음을 위한
장치였다.
비행하는 동안 그는 하늘의 별과 땅 위에 새워진 인간의 도성들, 인간의 대지를 바라보며
인간의 한계상황과 영원에 대한 갈망을 노래했다. 비행기가 그렇게 대중화 되지 않았던 시절에 조종사로서 유럽과
남미대륙을 오가는 대서양 횡단노선을 개척했던 그는 사막과 산 속에 불시착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되는 여러 차례의 경험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생텍쥐베리는‘야간비행’’남방우편기’’인간의 대지’ 그리고 ‘어린왕자’와 같은 단편들을 만들어 냈다.
‘야간비행’에서 비행 중대장으로 근무하는 리비에르는 자기의 모든 부하들이 맡은 바 임무 수행에 철두철미하기를 요구하는 인물이다.
또한 그의 명령을 수행하는 조종사 파비앙 역시 자기의 임무가 무엇인지 가장 잘 인식하고 있는 사명감이 투철한 인물이다.
석양의 황금색 빛줄기 속에서 남 아메리카의 끝인 파타고니아를 출발한 파비앙은 통신사와 함께 둘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하고
있던 중이었다. 파비앙은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본다. 거기에는 어둠
속에 빛나는 지상의 별들이 있고, 그 별들은 하나하나가 인간의 생활이 이뤄지는 곳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파비앙의 비행기는 폭풍우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파비앙은 푹풍
구름위로 떠올랐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 속에서 그는 어쩌면 무사 귀환은 불가능하다는 불길한 상황을 감지한다.
초기의 우편 비행일은 많은 어려움을 동반하는 것으로 조정사들은
늘 죽음을 감수한 위험과 싸워야했다. 특별히 야간비행 조정사들은 작고 불완전한 비행기에 몸을 싣고 ‘밤’이라는 위험 속을 오갔다. 생텍쥐베리는 이런 상황을
“너로 하여금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바로 살게 하는 이유인 것이다”이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삶의 본질적인 부분들을 마음의 눈으로 보기 위해 몸부림쳤던
생텍쥐베리는 제도와 관습으로 타락한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왕자’를 완성하고 얼마 후
정찰기를 타고 순찰중 코르시카 섬 인근에서 실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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