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참으로 다양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다. 그의 삶과 작품속에 녹아있는 ‘인간’톨스토이의 모습은
성(聖)과 속(俗)사이를 방황하다 어느 한쪽에도 확실하게 귀의(歸意)하지
못하고 귀족출신으로 부족한 것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말년은 기차역에서 노숙자처럼 쓸쓸하게 죽어간 허망한 것이었다. 기독교의 진리에 심취해 자기부정과 절제를 위해서 노년에는 채식주의자가 되었지만 어느날 밤 너무도 고기가 먹고 싶어 콜밧사(러시안 소세지)를 한 조각 배어먹고 자기의 나약함에 통곡을 했던 사람이 인간 톨스토이였다.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악성 베토벤이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클래식인데
이 음악 연주를 들으며 톨스토이는 열정적인 정사(情事)장면을 연상하면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서로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긴박한 연주를 펼치는 선율, 그리고 듀오로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피차간에 함몰한 모습을 보면서 경건생활을 추구했던 톨스토이는 한순간 경망한 성적 상상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갔다.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출판직후 한 동안 금서였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인해 톨스토이는 정교에서 출교조치를 당했다. 이유는 그 당시 기준으로 봤을때 너무도 노골적인
성묘사 때문이었다.
주인공 포즈드니세프는 피아노 연주자인 아내가 다른 남자와 열정적으로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연주하는 모습에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낀다. 그래서 아내의 행적을 뒷조사해보니 역시 상상했던데로
바이올리니스트와 불륜의 관계에 있던 것을 확인한 후 아내를 살해한다. 아내에게는 자신의 성적쾌락을 위한 도구,
그리고 정숙함만을 요구했던 포즈드니세프는 아내의 삶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모든 것이 자신에게 종속되야한다는 전형적인
‘마초 스타일’의 인간이었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포즈드네세프라는 주인공을 통한 액자구성의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써나가면서 결국은 자신이 포즈드네세프라는 자각을
하게된다. 자신의 불행했던 결혼생활, 젊은 시절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열정들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을 갖게되면서 자전적인 소설을 써내려갔던 것이다.
“…흔히들 사랑이라 부르는 시기와 동시에 일어나는
증오의 시기를 겪었던 셈이지요. 정열적인 사랑의 시기는 매우 긴 증오의 시기였고, 미적지근한 사랑의 시기는 짧은 증오의 시기였던 겁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이 사랑과 증오가
동물의 그것과 똑같지만 그 결과만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中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들, “사람에게는 얼마의 땅이 필요한가””참회록”“인생독본”과 같은 작품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인생을 지혜롭게 살기위해 필요한 깨달음을 들려주는 현자(賢者)의 소리다. 하지만 적어도 이 작품,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 드러나는 톨스토이의 모습은 평생 질투와 육적 욕망에 시달리며
번뇌했던 야누스의 이면이다. 그러나 누가 그런 톨스토이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오히려 그는 그만큼 인생을 치열하게 살면서 인생의 문제를 부등켜 앉고 소설을 통해 인간의 문제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톨스토이의 위대함은 바로 나약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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