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탈레스
윤리학
윤리, 도덕적인 면에서 고장이 나기 시작하면 한 나라의 운명은 이미 석양길에 들어선 것이라고 보면
된다. 아무리 경제적, 정치적으로 발전돼있고 군사력이 세계 최강이라고
해도 윤리, 도덕적인 기준이 무너지면 시간문제다. 아리스토탈레스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윤리학”을 통해서 정치와 윤리, 도덕성의 관계 그리고 개인 삶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선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있다.
세계
일등국가라고 자부하고 있는 미국은 오늘날 최고의 경제,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각 분야에서
윤리, 도덕적인 기준이 상실되고 절대적인 가치를 부인하는 쪽으로만 계속 흘려간다면 이미 미국의 장래는 정해진
셈이다.
아리스토탈레스의
윤리학은 한번 읽어서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책이다. 어찌보면 고전중에서도 가장 고리타분하고 난해한 책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이해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트로이카라고 할 수 있는 소크라데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탈레스의 사상을 관통해 이들 사상의 관계를 정립해 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들 3인방 고대 철학자는 BC 5-4세기에 걸쳐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연결되어져 있으며 이 세 기둥을 바탕으로 서구 사상과 철학 체계가 세워져있다.
니코마코스는
아리스토탈레스의 아들이면서 또한 제자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윤리학 책은 특별히 니코마코스가 추후에 정리, 편집했기 때문에 저자는 아리스토탈레스이지만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다.
아리스토탈레스는
이 책에서 인간의 삶을 향락적 삶, 정치적 삶, 그리고 관조적 삶으로 삼분했다.
향락적 삶은 짐승의 삶, 노예의 삶이라고도 할 수 있고 끊임없이 쾌락을 추구하지만 그 쾌락은 자신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그 쾌락, 음식을 다 먹고난 후에는 행복도 끝이라는 것이 문제다. 정치적 삶은 향락적인 삶에 비하면 조금 높은 수준의 행복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완결적이지는 않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평가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관조적인 삶의 자세는 행복의 근원을
외부에서 찾지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가운데 찾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는 선언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학에서 강조하고 있는 또 다른 요점은 윤리적으로 제대로 “할고 있다는 것”과 “제대로 행하는 것”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사실은 우리가 일상생활가운데,
특별히 신앙생활하는 가운데 늘 고민하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그의 대답은 앎과 삶을
행동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벡커(I. Bekker)의 편집본과 젤(Zell)의 편집본이 있는데 이중 벡커의 편집본을 원본으로 번역한 책이 좀 더 읽기 수월한 책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