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을 결정짖는 것은 부패한 인간의 심성에서 비롯된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가능성과 장래를 출생신분이라는 동아줄로 꽁꽁 묶어버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양반과 상놈이 있었고,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 그리고 유럽에서는 농노제도에 의해 귀족과 천민으로 인간이 구분되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모든 사람이 같은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올바른 인권에 사람들이 눈을 뜨기 시작하면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불합리한 신분제도를 깨기 위한
갈등이 표출되고 때로는 혁명이라는 모습으로 사회개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것이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으로
일어나 하루 아침에 모든 출생신분을 뒤집어 엎고 평등한 사회, 인간 유토피아를 건설하자는 모토로 혁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공산혁명은 시간이 흐르면서 귀족과 천민대신 당원과 비당원이라는 새로운 출생신분을 만들어냈다.
단편소설의
귀재 안톤 체호프는 러시아 사회에 일기 시작한 신분문제, 신분상승을 위한 젊은 영혼들의 절규, 그리고 다로 다른 신분에도 불구하고 불나방 같은 사랑에
빠져들었던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모습을 수채화 같은 터치로 그려냈다.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이라는 타이틀은 그간 통상적으로 안톤 체호프 단편집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돼오던 것을 출판사에서 기획상품으로 재편성하면서 달아논 제목이다. 이 책에는 16편의 체호프 단편소설들이 수록되어있는데 주로 탐미적인 눈으로 여성을 바라보고, 여성의 문제를
분석하기 좋아했던 체호프의 성향들이 담겨진 작품들을 모아놓았다.
체호프는
작가인 동시에 탐험가이기도 했다.1890년 약 8개월동안 시베리아를 거쳐 사할린 섬에까지 탐험을 하고 돌아와 <사할린 섬>이라는 역사적인 탐험 기행문을 출간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사할린 섬과 쿠릴열도의
4개 섬을 놓고 일본과 영토분쟁이 일고 있었는데 그는 이 기행문을 통해 일본에게 절대로 양보해선 안된다는 주장을 했다. 한국이 일본과 독도 영유권 문제를 다룰 때 배워야될 교훈이 이 책가운데도 있다. 사할린 섬 탐험은 체호프의 작품세계를 변화시켰다. 직업상 의사이기도 했던 그는 사할린 수용소에
수감돼있던 유배자들을 만나면서 인간의 기본적 권리가 권력과 제도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당할 수 있는 사회적 불합리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 후에 <결투>(1892), <흑의의 수도사>(1894), <귀여운 여인> (1899)등과 같은 주옥 같은 단편들을 완성했다.
또한 그는 후기에 연극에 관심을 보이며 모스크바 예술극단과
교류하면서 체호프 4대 희곡이라고 불리는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자매> 그리고 <벗꽃동산>과 같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체호프는 나이들어 예술극단의 여배우였던 올가 크니퍼를 만나 1902년 결혼했는데,
사할린 탐험기간동안 얻은 페병으로 인해 2년뒤에 44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가 죽은 다음 해인 1905년
”피의 일요일”사건이 발생하며 농민, 노동자의 반란이 계속 일어났고 얼마후 러시아 공산혁명 일어났던 것은 문학작품이 사회의 변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