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심
고르키 <어머니>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인류역사에서 신석기 시대로부터 청동기 시대로의 전환과 비교될 만큼 큰 영향을 남겼다.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제철기술의 발달과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산업혁명이 대도시마다 일어났고,
인류는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물질적인 풍요을 누리는 듯 싶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소수의 자본가에게는 엄청난 부의 축척을 가져다 주었지만 대다수의 노동자에게는 빈곤과 인간성 말살이라는 암울한 결과를 초래했다.
문학은
시대풍조를 반영한다. 막심 고르키의 소설 <어머니>는 19세기 러시아 산업혁명의 결과로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던 노동자 계급의 비참한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러시아 최초의 사회참여소설이다. 또한 이 소설로
인해 재정 러시아는 궁지에 몰리고 프롤레타리아 공산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됐다.
막심
고르키의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슈코프다. 단편 <밑바닥에서>을 쓰면서 그는 막심 고르키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뜻은 러시아말로 “최고의 고통, 쓴맛”이라는 뜻이다. 사회의 소외된 계층, 억업받는 노동자계급을
대변하면서 삶의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는 의지를 담아 필명을 막심 고르키라고 했던 것이다.
소설 <어머니>는 소련연방공화국이 탄생하고 난 후 소련에서는 필독도서였다. 자본가들의 독점으로인해 비참한 삶을 살고있는 노동계급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면서, 그래서 개혁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1917년 공산혁명은 고르키가 그렇게 꿈꿔왔던 것이었지만 막상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던 고르키는 뜻밖에도 혁명을
비판하는 위치에 서게된다. 새로운 사회질서와 인간 유토피아를 낭만적으로 그려왔던 고르키에게 공산혁명이 보여
준 폭력성과 부조리는 결국 평등사회를 가장한 또 다른 불평등 사회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비판적인 자세 때문에 한동안 그는 해외로 강제추방 당하기도 했다. 소련체제에서 그의 작품과
사상은 최고의 대접을 받았지만 막상 고르키는 여전히 “최고의 고통” 인생의 쓴맛만을 맛보는 작가로 인생을 씁쓸하게 마감했다.
한국에서도 7,80년대 고도경제성장시대를 건너오면서 한동안“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성북동 비둘기”와 같은 사회고발 소설이 보수쪽에서
말하는“빨갱이 사상”이라는 꼭지를 달고 젊은 대학생들의 피를 끓게 만들던
시절이있었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공단 노동자들, 재개발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살던 집이 강제 철거당하는 철거민들, 이쁘장한 여자아이들은 투기로 돈 좀 모은 졸부들에게 성적 노리개로
농락당하는… 그런 사회 부조리를 읽으면서 젊은이들은 의로운 분노에 사로잡히곤했다. 하지만 세월의 강을 건너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도 모두 부질없는 “몸짓”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절대로 유토피아를 이 땅 위에 스스로 건설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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